[나감책 No.8] 촉촉이 내 영혼을 적시는 그대(soulnote님)

12월 10일. 촉촉이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날이 많이 춥지 않은 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네요. 그 소리에 올해 만났던 책들, 사람들을 하나둘 꺼내봅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오늘 함께할 나감책 주인공은 soulnote님이십니다. 반디 가족 여러분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실 거예요...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탁 트인 창가에 자리를 잡습니다. 추위를 떨쳐내지 못하고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 보이는 저녁. 때마침 올 들어 첫 눈이 내리고 있네요. 잠시라도 세상에 더 머무르려는 듯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천천히 맴을 도는 함박눈. 마치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는 솜사탕처럼 포근한 그 생김새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런 날 마음을 보듬어 주는 책 한 권과 마주한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죠.

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갑니다. 그 전까지 책이란 읽어야하는데 쉽사리 읽히지 않는 골치 아픈 존재였죠. 괜한 의무감. 아무도 읽어라 하지 않는데 책을 읽지 않아 어딘가 한 구석이 불완전한 느낌, 이라면 이해가 좀 되실까요. 3년 전 어느 날,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즈음부터 나름의 습관이 생겨 책을 읽어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내내 책을 읽고 있지요. 어느 정도냐 하면 말씀드리기 쑥스러울 만큼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제 갓 독서에 재미를 붙인 터라 느릿느릿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라 할 수 있거든요.

산에 올라보지 않았던 사람이 처음부터 정상을 정복하고자 속도를 내다보면 중간도 못 가 지치고 말지요. 독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다 산책을 하듯 느린 보폭으로 읽어갑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새 바람 물소리를 온 몸으로 만끽하며 산행하는 사람처럼 책을 읽다보면 이전까지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던 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세밀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세상을 향해 보다 농밀한 시선을 던지게 만들죠.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내면의 다단한 감정과 오롯이 마주한다는 것은 삶의 또 다른 희열입니다.

책에 눈을 뜨고부터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과 그동안 읽지 못한 구간들 사이에서 조바심이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저의 느리디 느린 독서습관으로 볼 때 평생 가야 만날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누가 순위를 매기는 것도 아닌데 과욕을 부리다 지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기보다 수집하기에 열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답니다. 단 한 권이라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로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줄기차게 내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온 마음을 다해 마음에 새기고 느끼는 과정입니다.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더하는 것은 나중의 문제지요. 혼자만의 잣대로 판단을 내리기보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올 한 해에도 많은 책들을 만났습니다. 읽은 책보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의 수가 더 많긴 하지만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저에게 소소한 행복을 안겨준 책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일단 베스트셀러는 제외시켰습니다. 비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제 마음을 그득하게 채워준 책들을 골라보았답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뜨듯한 아랫목 벙어리장갑 크리스마스트리의 영롱한 불빛처럼 온기를 전해주는 좋은 책 한 권이 당신의 마음을 데워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soulnote님의 나감책 5]

 

 

1.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장은진, 문학동네)
-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써내려간 편지를 받아본 기억이 아련하신가요?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세요. 다소 느리고 어설퍼 보이는 아날로그적 정취가 빈틈없지만 어딘가 허전함을 안고 사는 디지털화된 마음을 차분히 다독여준답니다. 눈 먼 개 와조와 삼 년째 여행을 다니는 편지여행가 지훈,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소설을 팔고 새로운 소설을 집필해나가는 방랑소설가 751.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유난히 서툰 두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웃음과 눈물 기막힌 반전이 잠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네요. 누구에게라도 강권하고 싶은 책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2. 어린왕자 팝업북(생텍쥐페리, 문학동네)

- 누구나 한 번 쯤 마음에 품어보았을 ‘어린왕자’가 삼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팝업북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상상으로만 만났던 세계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 어린왕자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소장하고픈 욕심이 생길만한 책이랍니다. 거대한 부피를 자랑하는 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에 제 아이에게 꼭 물려주고 싶네요.

 

 

3. 마음가는대로 산다는 것(앤 라모트, 청림출판)

- 약물과 알코올 중독, 폭식증, 자살미수, 불륜, 낙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허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쏟아낸 작가 앤 라모트. 절망적이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과거를 거침없이 써내려간 그녀의 솔직함에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당당하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이 책은 자신의 과거와 화해를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한 여성의 솔직담백한 자기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던 지난 삶을 시종일관 명랑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기지에 삶을 향한 긍정의 시선이 느껴지네요. 아직 화해하지 못한 자신과의 문제가 있다면 이 소설을 통해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4. 나이브? 슈퍼!(에를렌 루, 문학동네)

- 스물다섯 살 청년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 일명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무심결에 방치해 두었던 감정들을 톡톡 건드려 주네요. 인생이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관심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특별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읽다보면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키득키득 웃게 되는데요, 다소 흡입력이 약한 제목과 표지에 비해 주인공의 말투와 생각에서 엉뚱 발랄함이 묻어나기 때문이지요. 웃으면서 읽으세요, 깨달음은 덤이랍니다!

 

 

5. 서툰 여행(최반, 안그라픽스)

- 언젠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질 것을 꿈꾸며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도 여행기!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듯 조곤조곤 이어지는 작가의 말투가 사뭇 정겹습니다. 이 책은 어서 인도로 떠나 보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인도를 먼저 마음에 품어본 자의 온화함이 아직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인도를 사람을 세상을 품어보라 말하고 있는 듯하네요. 수많은 여행서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이병률의 ‘끌림’처럼 단 번에 제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랍니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리뷰 보기(클릭)] 

잘 보셨나요? 그럼 이제 soulnote님 집에 놀러가욧! ^0^/ [클릭클릭!]
(다른 리뷰도 좋지만, <어린왕자 팝업북> 리뷰는 꼭 읽으시길 바랍니다. 안 보면 손해! ^-^b)

내일이 벌써 금요일이네요. 하루하루 나감책 보는 재미에 빠졌더니, 벌써 주말!
주말을 몰고 올 다음 나감책 주자도 기대해주세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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