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외롭지 않다. 나는 자유다

 

정현종, <섬>, 열림원, 200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17쪽, ‘섬’)

섬은 외롭다. 망망대해 떠있는 섬, 곁에 친구 섬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엔 수이 건널 수 없는 쪽빛 심연이 있다. 섬은 우리를 닮았다. 아니 우리가 섬을 닮았나? 날로 외로워지는 인간은 오래 전부터 외로운 섬을 닮아간다. 서로 닿지 못해 탄식하는 섬의 한숨. 인생의 반은 견뎌야하는 인간의 쓸쓸함. 그런데 정현종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 한다. 둘 중 하나다. 외로움을 견디는 유전자를 체득했든지, 아니면 다른 섬을 꿈꾸든지.

정현종 시인의 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뭔가 끊임없이 만나 속살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는 ‘바알간 불꽃의 감나무에 달려가 환하게 환하게 열리’고(‘환합니다’), ‘도토리가 톡 떨어져 굴러가는 도토리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뒤를 돌아본’다.(‘안부’) 또 ‘나무는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빈’다.(‘사물의 꿈1’) 그래, 외롭다 외롭다하여 주저앉아 있으면, 서로 닿을 수 없겠지. 섬의 뿌리도, 사람의 외로움도 한 없이 깊으니까. 그 무게를 온전히 들고 일어나야만 손끝은 낯선 설렘을 마주할 수 있다.
 


(이미지 제공 - 열림원)


‘너’와 ‘내’가 마주선다 하여 고민이 사라지고, 외로움이 다하는 건 아니다. 우리네 삶이 ‘의지’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노 시인이 모를 리 없다. 우리는 끝없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나는 반짝인다”고 노래하기 위해서는 ‘그대 별의 반짝이는 살 속으로 걸어들어가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그대는 별인가’) 그런데 사람 사는 게 참 얄궂은 것이 어느덧 ‘지나친 마음씀’이 고개를 든다. 외로울 때는 몰랐던 집착 같은 사랑. 사랑이란 이름의 아픔. 아픔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또 다른 외로움….

지나침이 살포시 고개를 들 때까지만 해도 모른다. 문득 찾아오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에 너무 아파 지금 여기만 벗어나면 될 줄 알았는데, 과한 마음은 날 선 칼날을 불러온다. 이는 시인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 이 고생이구나 // 나를 떠나면 / 두루 하늘이고 / 사랑이고 / 자유인 것을”(99쪽, ‘어디 우산 놓고 오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현종 시인은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생명은 숨 쉬기를 멈추지 않기에. ‘강물은 우리의 피요, 바람은 우리의 숨결이며, 흙은 우리의 살’이다. 또 ‘나무는 구름을 낳고, 구름은 강물, 강물은 새들을, 새들은 바람을, 바람은 다시 나무를 낳는’다.(‘이슬’) 어느 곳 하나 쉽게 끊을 수 없는 생명의 무한 순환고리, 고리 속 어딘가에 있을 J에게 시인은 고백한다.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111쪽, 갈증이며 샘물인 - J에게)
 


(이미지 제공 - 열림원)


이번 출간된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 <섬>은 열림원의 ‘그림이 있는 포에지’ 시리즈의 첫 결실이다. 짙고 푸른 <섬>에는 정현종 시인의 시 30여 편과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들, 자필 원고가 함께 있다. 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니체, 그가 사랑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 가르시아 로르카의 초상화, ‘움직임’이 만든 화석들, 그리고 숱한 시를 노래했던 그의 손 드로잉까지. 시와 그림이 한데 모인 <섬>은 외롭지 않다. 오생근 문학평론가가 귀띔해준 정현종 시인의 모습으로 <섬> 여행을 마친다.

“‘바오밥 나무’라는 작은 커피숍에 간 적이 있었다. (…) 마침 그날 커피를 마시던 중 들려온 음악 중에 <희랍인 조르바>가 있었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얼마 전 TV에서 본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적힌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 정현종 시인도 영화의 그 장면이 생각났는지 앉은 자리에서 잠시 두 팔을 들고 흥겹게 춤추는 동작을 취했다.”(139~140쪽, 발문 ‘날자, 행복한 영혼들이여’)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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