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 - 웃기고, 순수한, 하지만 날카로운

 

마르첼로 도르타 편,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 수린재, 2009


아름다운 남녀의 운명 같은 사랑이 빚어낸 비극적 결말! 숨 막히는 전략으로 승패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최고의 전투! 이 모두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묘사하는 말이다. 사랑, 운명, 전쟁, 영웅 등 트로이 전쟁은 후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시인들은 로맨틱한 사랑을 노래했고, 예술가들은 고대 영웅들을 찬양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썼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을 조금 다르게 보는 이가 있다. 그 목소리를 잠깐 들어보면.

옛날 옛적에 율리시스가 있었는데, 그는 트로이란 도시를 홀라당 태워 먹었다. 그는 나무로 만든 큰 목마를 이용해서 사기를 친 다음 적들을 다 죽였다.(30쪽)

만약 『오디세이』를 쓴 호머가 이 얘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글쓴이의 명쾌함에 침을 꼴딱 삼켰거나, 그 발칙함에 무덤 속에서 땅을 칠지도 모른다. 대문호 호머를 진땀나게 한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의 변방도시인 아르자노에 있는 한 초등학생(인터넷 전문용어로는 ‘초딩’)이다.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는 이탈리아 초등학생들의 작문을 모은 책으로, 아이들의 천진함과 비범함(?)을 만날 수 있다.

아르자노는 무척 가난한 동네다. 택시를 타는 사람이 없어 택시가 없단다. 만날 술 먹고 심야택시를 타는 사람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책장을 넘기면 아이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진다. “우리 집은 전부 부서졌다. 가구도 부서졌고, 의자도 부셔졌고, 방바닥 타일도 부서졌고, 벽도 부서졌고, 화장실도 부서졌다. 그래도 우리는 그 집에 산다. 왜냐하면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도 돈도 없다.”(17쪽)

1980년,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폴리 인근지역의 대지진. 이 아이도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로 인해 가구도, 의자도, 방바닥 타일도 부서져버렸다. 그들이 겪는 비참한 일상에 눈물이 삐죽 나오려 한다. 하지만 아이는 씩씩하다. 온 가족이 한 침대에 잘 정도로 비좁아 손님이 오면 쫓아내고, 서로 얼굴에 뱉어낼 정도로 맛없는 음식만 먹지만 아이는 부서진 집을 좋아한다. “집아, 나는 네게 사랑을 갖고 있단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그 의젓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런데….

하지만 만약 내가 복권에 당첨돼 억만금을 받게 되면, 나는 전혀 새로운 집을 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부서진 집은 파스콸레에게 선물하겠다.(18쪽)

헉! 당했다. 그렇게 자신의 집을 사랑하던 녀석이 돈이 생기면 바로 새 집을 사고, 부서진 집은 평소 미워하는 친구에게 줘버리겠단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웃게 되고, 보고 느낀 것을 가감 없이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푹 빠지게 된다. 특히 ‘그러나’, ‘하지만’ 등의 접속사가 나오면 다음에 무슨 얘기가 나올지 손에 땀이 먼저 난다.

웃음 뒤의 알싸한

이 책은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유쾌하고 재밌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마약 중독자 이야기, 세상은 충분히 불평등하다는 푸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일상의 교훈’ 등.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는 말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발’ 같아 마음이 쓰리다.

TV 뉴스 방송을 하는 남자는 정말 못 생겼는데 이따금씩 말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웃는다. TV 뉴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축구 뉴스뿐이다. 하지만 나폴 리가 졌을 때는 그것도 싫다. 앞으로는 우리가 밥 먹을 때 제발 좀 TV 뉴스를 안 봤으면 좋겠다. 그 대신 좀더 늦을 시간에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성스러운 평화 속에 밥을 좀 먹어 볼 것 아닌가!(141쪽)

아이들의 글은 5쪽을 잘 넘지 않는다. 2쪽 안팎의 글도 많다. 하지만 꾸밈없는 이야기 속에서 천진난만한 유머, 아이들의 생명력, 소박한 희망, 세상을 향한 그들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눈을 정화시키기에 좋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아이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에게서도 순수한 글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이 학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며 무거운 가방에 눌려있는 건, 조금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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