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정유정 | 『내 심장을 쏴라』 | 은행나무 | 2009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1회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다. 세계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뚜렷한 개별성이 있다. 텍스트의 가독성과 재미를 중시한다. 한국판 나오키상(直木賞)이라 할 수 있다. 세계문학상은 읽기 쉽고 몰입도가 높은 대중적인 소설이 꾸준히 선정됐다. 도발적인 소재와 개성 있는 문체, 빠른 속도감과 흡입력 있는 서사를 갖춘 작품이 세계문학상의 표적이 된다.

1회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은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질문함으로써 꽤 충격적인 도발을 시도했다. 신경진의 『슬롯』은 도박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백영옥의 『스타일』은 신세대 한국여성의 진화된 원형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잘 읽히면서 도발적이고 신선한 점이 세계문학상 수상작의 공통적 분모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대중에게 자리매김한 소설가 정유정의 장편소설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재미있지만 보다 '문학적'이다. 요컨대 재미와 무게를 함께 지녔다. 최근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내 심장을 쏴라』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 소설은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삶에서 열정을 얻는다.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1인칭 화자 이수명, 그와 같은 날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력장애인 유승민. 둘의 첫 만남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첫 만남의 데면데면함부터 친밀한 우정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생기 있게 담겼다.

수명과 승민은 각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수명이 내면으로 자신을 축소한다면, 승민은 외면을 향한 방향에 집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수명과 승민은 모두 과거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지낸다. 정유정 작가는 두 인물의 트라우마와 그것에 함몰되어 일상이 뭉개지는 현실의 긴장감을 잘 그려냈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과거에 봉착되어 있던 수명과 승민의 내밀한 비밀이 밝혀진다. 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고백으로 깨달아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서사는 느리다. 몰입하기엔 미지근하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게 되면 여태까지 소급되어 응축된 이야기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독자의 가독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소설의 말미, 주인공 수명이 오랫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던 삶의 참된 진실을 인식하고 용기를 표출하는 장면, 그 순간은, 이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강렬한 울림이자 카타르시스다.

『내 심장을 쏴라』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바로 '자아'와 '자유'다. 폐쇄된 정신병동이라는 외면의 벽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자아를 제대로 인식하기를 원하는 내면의 열정에 닿아있다. 두 인물의 과거의 아픔과 이에 구속된 일그러진 현재상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못 두었을 때를 그대로 은유한다. 자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빠진 채 비본질에 대한 집념과 고집만이 반복될 뿐이다. 자유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방식은 자아의 역동과는 거리가 먼 외적 환경의 파괴, 또는 내적 울림과의 단절에 불과하다.

두 인물의 자유 성취와 자아 성찰에 대한 공전(空轉) 행태는 승민이 병원을 탈출하여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활공하는 바로 그 순간, 앎과 행복의 실현으로 반전된다. 승민은 끝내 죽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소설의 마지막 수명이 정신병원을 퇴원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죽은 승민은 수명에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냐고. '새' 아니면 '비행기'냐고. 이에 대한 수명의 답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는 것.

한 사람의 자유는 타자의 간섭이나 외부의 구속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 또한 타자가 아닌 자아의 추동, 즉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生)의 강렬한 욕망은 항시 자유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내 인생을 '나'로서 사는 것은 분명한 진리다. 이 타협할 수 없는 절대 명제 앞에서 삶은 때때로 외부를 의식하고 타자에 주눅들며 방황한다. 진정한 자유의 가치는 내가 내 삶의 주어로서 존재하며 약동할 때 빛을 낸다. 내 실존은 누구도 욕망하지 못한다. 이 말이 진리라면, 외부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내 심장을 쏴 봐.

굉장히 잘 쓴 소설이다. 서사를 풀어가는 능숙함과 재치있는 입담이 돋보인다. 순간순간에 감동과 재미가 녹아 있다. 정교하고 정제된 묘사와 독자의 호흡을 쥐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이 훌륭하다. 이런 소설에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자유와 자아의 고찰에 번민하는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소설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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