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로그아웃』 - 이제 좀 꺼져줄래

 

 


 


알렉스 릴레 | 『달콤한 로그아웃』 | 나무위의책 | 2013


“모두 그러라는 것은 아냐. 하지만, 적어도 한 집 정도는 조명을 끄고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이야.” 이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의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는 또 이런 아름다운 문장도 실려 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대부분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28쪽)

나는 종종 2G 폰으로 오해받는 폴더 폰을 사용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난생처음 휴대폰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 휴대폰을 대학 졸업하고도 한참을 쓰다가 지금의 휴대폰으로 바꾼 지는 5년이 넘었다. 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 찾기가 힘든 세상이다 보니 “아직도 이런 폰 쓰는 사람이 있어요?”라며 가끔씩 ‘미개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이제 그만 스마트폰 장만하지.” 하는 구슬림도 없지 않다. 스마트폰이 유용할 때가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내키지가 않는다. 시대 변화를 역행하고픈 반항 심리 따위가 아니다. 소심하고 은근 모범생병이 있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회사 출근하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집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예전 경험을 미루어 볼 때 휴대폰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물건이 아닌 듯하다. 지금 쓰는 휴대폰만 하더라도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하고(실제로 접속해 본 적은 없지만), 음악, 게임이며 여러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통화하고 문자 주고받는 정도의 기본 중의 기본 기능만 충실히 쓰고 있으니, 이런 사람에게 스마트폰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스마트폰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끈기와 수고로움을 요구하지만 컴퓨터라는 기기가 있는 한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니 스마트폰 없이도 당분간은 살아갈 수 있지 싶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차치하고 인터넷 없이도 살 수 있을까?

지금껏 잘 써 온 ‘블랙베리’를 휴대폰 가게 점원에게 맡겨둔 것도 모자라 회사와 집에서 쓰는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 프로그램을 모두 삭제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신문기자. 최신 정보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할 신문기자가 과연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 살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달콤한 로그아웃』은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간 한 남자의 182일간 기록이다. 제목과 달리 디지털 세계와 로그아웃을 선언한 남자의 생활은 솔직히 그리 달콤해 보이지 않다. 아날로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남자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겪고, 심지어 금단현상까지 보인다. 이런 남자 말고도 이 책에는 자유롭게 밖을 나다니지 못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빼앗긴 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호소하는 교도소 수감자,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와서도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한 엄마, 남자가 무엇을 묻든 “구글에서 찾아봐!”라고 대답하는 직장 동료들이 등장한다. 내 모습을 연상시키는 인물들의 등장에 괜히 속이 뜨끔하다.

남자는 이 기록을 통해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거나 지금 당장 디지털 네트워크를 끊으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남자 역시도 실험이 끝난 뒤 집에서만은 웹 브라우저를 설치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감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었으리라. (남자의 친구가 비밀번호를 몰래 바꿔놓는 바람에 웹 브라우저 설치는 순간 미수에 그치지만, 뒷이야기는 알 수가 없다.) 남자는 그저 몸소 아날로그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느낀 매 순간의 감정을 솔직히 적고 있을 뿐이니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편리한 문명의 기기를 거부하고 굳이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가 보는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다가는 도태되고 고립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 시스템 역시 많은 부분을 디지털 네트워크에 의존하면서 인터넷 없이는 살기 어려운 구조로 변모해 버렸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런 이유 혹은 변명 한 가지씩은 가슴에 안고 문명 기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책에 나온,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왔다는 그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스마트폰 중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하고. 그러면 그녀는 분명 (어쩌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이요.”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녀 자신도 분명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그 순간이 둘도 없이 소중한 시간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도 알고 가슴으로도 아는 일인데 눈은 스마트폰 화면을 향하고 손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기 바쁘다. 참 이상한 일이다.

구글 창립자인 에릭 슈미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꺼라.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살짝 바꿔보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컴퓨터와 휴대폰 때문에 놓치지는 마라. 남자가 하고 싶었던 말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새벽하늘'님은?

나무에게 부끄럽지 않을, 좋은 책을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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