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다른 아이들』 - 세상에는 이런 부모들도 있다

 

 


 


앤드루 솔로몬 |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열린책들 | 2015


 

장애는 질병일까요? 정체성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장애가 질병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자는 장애를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듯 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수직적 정체성과 수평적 정체성에 대해 말합니다. 부모와 동일하게 물려받은 민족성, 피부색 유전, 언어, 종교 등은 수직적 정체성입니다. 반면에 부모와 구별되는 속성, 이를테면 게이, 신체장애, 천재성, 정신병, 자폐, 지적장애 등은 수평적 정체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 제목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그 '부모와 다른'이 바로 수평적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정체성이라는 사실이 당사자들을 온전히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자식의 장애는 부모의 자부심을 욕보이고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49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부모의 그것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겠지요. 심지어 저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아버지도 자신의 외모를 닮은 자식한테는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다. 혹시라도 불량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부디 아버지와 닮은 외모를 가졌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24쪽)

 

그런데 사실 저자 자신부터가 수평적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사람입니다. 저자는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 놓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아들'이란 제목의 1장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한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에 적대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저자의 용기에 박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 1권에서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에 관해 다룹니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소재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취재해 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저는 청각 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을 각각 다루는 2장과 3장, 4장을 읽을 때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5장 자폐증 이야기부터는 계속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자폐증 아이들에 관해 말한다면, '부모가 준 사랑에 반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님 주신 사랑의 극히 일부도 갚지 못하지요. 하지만 자폐증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는 있지만, 어느 부모나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폐증 아들을 살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데브라 윗슨은 경찰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가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장장 11년을 기다렸어요." (525쪽) 이 책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사례가 너무도 많이 열거돼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것입니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집니다.) 저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부모 중 절반가량이 이타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면서, 법정이 이런 범죄에 대해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저도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자폐증 자녀를 두었다면 과연 끝까지 참는 부모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이 제게 주어진다면, 쉽게 대답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정신분열증은 다른 수평적 정체성과는 달리 늦은 사춘기나 성인 초기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식을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529쪽) 저자는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정신분열증 환자와 그 부모)의 고통은 끝이 없으며, 특이하게도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 (630쪽) 정신분열증 환자 해리의 어머니 키티의 말을 들어볼까요. 아들 해리를 보살피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심력을 소모하는지 묻는 저자에게 키티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내게 있는 전부요, 모조리 다요. 정말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541쪽) 자신의 전부를 자기 자식을 위해 소모해버리는 부모 앞에서, 저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떤 보상을 바랐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는 비유적 표현에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전부를 불태워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가슴을 치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특히 7장의 '장애'에서 '중도 중복 장애'의 사례가 가장 마음을 울리더군요. 중도 중복 장애의 '중도'는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고, '중복'은 말 그대로 장애가 겹쳐진 상태를 말하지요. 그러니까 중도 중복 장애는 그 두 상태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다음은 이러한 중도 중복 장애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던 데이비드와 세라 해든의 이야깁니다. 첫째 아들 제이미는 지적 장애에다 전신마비 상태입니다. 다행히 둘째 딸 라이자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아뿔싸! 셋째 샘이 제이미와 같은 증후군을 앍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머니 세라는 샘의 진단명이 나온 지 이삼 개월이 지났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갈등했어요. 그대로 제이미와 샘을 데리고 차고로 가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다 같이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죽고 싶었죠." (641쪽) 막내 샘은 몇 년 후 욕조에 잠겨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는 '너무도 쉽게 부모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부모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장애를 지닌 자녀들을 위해 끝까지 버티고, 끝까지 사랑해준 부모들에 견주면 제 사랑은 정말이지 왜소한 것이었더군요. 책을 읽으며 계속 제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식에게 한 수많은 실수 가운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네요. 이런 저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나는 선의가 부모의 실수를 감쪽같이 지워 주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실수의 무게를 줄여 준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은 끔찍한 경험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끔찍함이 줄어들 것이다." (700쪽)

이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긴 하지만, 저는 확실히 진짜 부모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비록 자녀들이 나와 다르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 절실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캐러웨이92'님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읽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독서하지 않는 자는 평생 무언가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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