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질》 - 책방 아저씨

 



은종복 | 《풀무질》 | 이후 | 2010

성균관대로 가는 길목에 풀무질이라는 서점이 있다. 나는 한때 그 근처를 매일 지나다녔지만, 실제로 풀무질에서 책을 산 일은 거의 없었다. 신입생 때는 놀기 바빴기 때문에 책을 멀리했었고, 복학 이후로는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별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풀무질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받고 있다. 선배들은 이왕 책을 사려면 풀무질에 가서 사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런 얘기에는 분명히 '풀무질 주인이 학교 선배이기 때문에' 혹은 '중소서점을 살려야 해서' 라는 뻔한 이유 이상의 것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했었다. (물론 짐작만 했을 뿐 선배들이 풀무질 얘기를 많이 한 이유는 정확히 몰랐다.)

나는 어떤 가게든지 주인의 냄새가 밴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주인의 세계관, 가치관이 가게에 담기는 것이고, 그것이 가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또 가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풀무질은 전국에 얼마 남지 않은 사회과학 전문서점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에 도저히 돈이 안되는 학술적인 책을 파는 곳이다. 망하기 딱 좋은 형상이지만, 무려 20년 넘게 성균관대 곁을 지키고 있다. 끈질긴 생명력은 서점 주인의 삶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풀무질의 주인인 은종복 씨는 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사회과학 공부를 하며 민주화 운동 시위를 밥 먹듯이 나갔었다. 엄혹한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에는 취업이나 돈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그 시대의 부름에 응했던 사람 중 상당수는 지금 기득권이 되었고, 자신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현실과 타협했다. 하지만 은종복 씨는 20대 시절의 자신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이 시대의 불온서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팔며, '반자본주의', '평화', '환경'과 같은 가치를 위해 아직까지 고루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점을 찾은 손님에게 자신이 쓴 쪽글을 나눠주기도 한다. 이 책에는 그 쪽글이 많이 실려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선배들이 왜 그렇게 풀무질 얘기를 많이 했는지 깨달았다. 요즘 누가 타국의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며, 또한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가? 요즘 누가 돈에 눈먼 세상을 욕하며, 돈보다 인간이 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그런 옛스러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곳이 풀무질이다. 풀무질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을 아니라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정신을 공유하는 곳이다. (실제로 풀무질은 책 판매뿐만 아니라 책 읽기 모임을 주최하기도 한다.) 참 고맙게도 나의 선배들은 풀무질의 가치와 정신을 귀하게 여겼고, 그 마음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부디 풀무질이 이 냉혹한 시대의 파도에 부서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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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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