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에릭 호퍼 | 《길 위의 철학자》 | 이다미디어 | 2014

 

뒤늦게 에릭 호퍼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세상엔 그가 없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국가, 인종,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선사한다. 그는 평생 장사 생활과 식당 보조 웨이터, 야적장 인부, 사금채취공, 부두노동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남긴 삶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풍미가 가득하다. 어렸을 때 시력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광적인 독서 습관은 에릭 호퍼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에릭 호퍼의 인생과 독서 습관 덕택이라 생각한다.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가 남긴 자서전으로 그가 썼던 다른 책들에서보다 떠돌이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가난과 굶주림은 그의 생을 빚어가는 양분이 되었다. 젊은 시절 노동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다가 이른 결론은 자살이었다. 그는 수산염을 사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자살을 시도했다.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자살이라는 결론은 방랑하는 삶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에릭 호퍼는 방랑자로 살게 되었다. 그는 샌디에이고 엘센트로 임시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모든 사상을 세워나가는 데 기초가 되었고, 그곳에서 한 달여간 낯선 사람들과 지내며 인간의 속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사건은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이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던 에릭 호퍼는 토마토 모종의 성장을 관찰하다가 식물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웨이터로 일하던 식당에서 그는 독일어로 된 책을 어렵게 읽고 있던 스틸턴 교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만남은 계속 이어졌고, 에릭 호퍼는 스틸턴 교수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스틸턴 교수의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택했다. 스스로 이러한 지식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어째서 궁핍하고 비참해 보이는 삶을 산 것인지 나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독으로 철학적,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던 에릭 호퍼에게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의 대답은 몽테뉴의 수상록일 것 같다. 그는 이 두꺼운 책에서 자신과 마주쳤다고 표현했다. 몽테뉴가 마치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잠재된 생각에 관해 쓴 것 같다고 한다. 나 또한 마치 읽은 느낌이 드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었다. 수상록에 어떠한 내용이 실려 있기에 에릭 호퍼라는 한 인간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 무척 흥미로워졌다.

 

이리저리 떠돌며 일하고 책만 읽었을 것 같은 에릭 호퍼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만났던 헬렌이라는 여인에게 한눈에 반했다. 50년이 지나 그는 자서전에 그녀와의 추억을 쓰는 순간에도 손을 뻗어 그녀를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고 말한다. 헬렌과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그였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자신의 여생을 소비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껴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갔다. 어째서 그는 그녀와 함께 정착하지 않았을까? 한때의 감정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그녀와 함께 살면 한순간의 평화도 얻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자격지심은 아니었을까.

 

젊은 시절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가던 에릭 호퍼는 2차 세계대전 중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부두노동자로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길 위에서의 삶과 부두에서의 삶이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했다. 그 불안정성은 독특하게 비슷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관하여 경험하고, 그것이 운영되는 독특한 구조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내가 노동의 현장과 노동조합에서 받았던 충격이 에릭 호퍼가 경험했던 것과 유사하다. ‘보통 사람들이 교육받은 사람보다 나눔에 더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감상적’이라는 에릭 호퍼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에릭 호퍼의 아주 짧은 생의 순간들을 마주하니 ‘길 위의 철학자’라는 제목이 그의 삶과 아주 잘 어울린다. 떠돌이, 방랑자라는 에릭 호퍼의 자기 인식은 삶에 대한 정직한 대면에서 온 것이리라. 수년 전부터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나는 그의 삶, 그가 남긴 글들에 힘찬 자극을 받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초원위의양'님은?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연구원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들판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어서 환경 관련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점점 더 깨끗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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