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마크 해던 |《빨간 집》 | 비채 | 2014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말하지 않을까. 내게도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자리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가 짐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는 가족…. 분명 어떤 이는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마크 해던의 《빨간 집》이 곧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진 않을까. 책 제목부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었던 남매가 어머니 장례식을 통해 너무나 오랜만에 재회한다.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금전적, 육체적으로 나누어 돌보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 서로의 속내는 달랐다. 한편 서로 엇갈린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남매와 그들의 가족은 불현듯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이란 게 그렇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한다 해도 꼭 한 번은 싸우기 마련이다. 그만큼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남보다 못한 가족인 누나 안젤라와 남동생 리처드, 그들의 배우자와 여행 자체를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은 어떨까. 이들의 가족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으며 위험천만하다.

 

안젤라와 리처드는 서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다를 정도로 거리가 있다. 리처드는 가족 곁을 떠나 당당히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안젤라의 마음은 꽤 복잡하다.

 

옆 좌석의 안젤라를 곁눈질했다. 그 옛날, 대학 술집에 앉아 있던,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뚱뚱해지고 살갗도 처지고 장딴지에 정맥이 불거져 나와서 할머니가 다 된 모습에 그는 넌더리가 났다. (13쪽)

 

안젤라의 남편 도미니크는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엉망이다. 그들에겐 자식들이 있다. 알렉스, 데이지, 벤지…. 첫째아들 알렉스는 리처드의 딸(아내의 딸) 멜리사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데이지는 종교에 심취한 소녀로, 멜리사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시험대에 처하는 상황에 놓인다. 막내 벤지는 나이 차이가 있는 형과 누나, 여기에 부모님까지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문제와 생각들이 벅차기에 가족들의 제대로 된 보살핌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처드의 가족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현재 리처드를 괴롭히는 것은 법정까지 갈지 모를 의료사고다. 그의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연관은 되어 있다. 리처드는 수시로 환자를 떠올리며 찾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처드는 아내 루이자를 통해 안정을 얻으며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간다.

 

한데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리처드와 루이자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딸 멜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는데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아픈 곳을 본능적으로 잘 알아챈다. 교묘하게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도 한다. 솔직히 멜리사가 내 딸이라면 무서울 거 같기도 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죄책감 없이 행하는 멜레사의 모습은 선뜻 예뻐하기 어려우니까. 멜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문제를 데이지에게 털어놓지만 데이지의 반응에 마음이 상하고 만다. 데이지 역시 무엇인가 이끌리듯,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며 양쪽 부모 모두를 긴장시키고 만다.

 

엄마도 사람이었구나. 이 당연한 사실을 어째서 그토록 모르고 지냈던 걸까.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어 엄마를 붙잡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지난 세월이 백일몽처럼 밀려오면서 데이지는 시내로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온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129쪽)

 

딸과 엄마 사이는 특별하다. 이 특별한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벽을 치는 일이 흔하디 흔하다. 사춘기 딸이 갑자기 심취해 버린 종교와 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자신이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크기에 사춘기 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엄마 안젤라에게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가족끼리의 여행이 애초부터 순탄할 리 없었다.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일이 생겼고, 그들은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으며 또 서로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부딪히고 마음이 상해 더 깊은 골이 생기기도 했지만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이야기는 기형아를 사산한 안젤라가 수시로 아기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 놓인 부분이다. 사산아로 인해 그녀 스스로 더 고립되고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지. 안젤라는 자신의 아픔을 껄끄러운 올케 루이자에게 털어놓으며 루이자는 안젤라의 아픔과 고통, 상실 등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해결책을 얻어야만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처음에 만날 때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현실 속 우리 가족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우리 역시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소소하게 갈등을 겪을 수 있기에 충분히 이해된다.

 

여덟 명의 가족이 8일간의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각자의 눈에서 바라보기에 어쩌면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다음에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가족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으며 이야기를 통해 내 가족,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떼12'님은?

책을 좋아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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