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감옥》 - 길들이려다 물들었네

 

 

니콜라스 카 | 《유리감옥》 | 한국경제신문 | 2014

 

예전에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에 대한 수업을 들었었다. 처음으로 한 일은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었다. “어떻게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현재 다뤄지는 UX의 시작이고, 끝이다. 《유리감옥》을 읽고 나는 무서운 미래를 담은 판도라의 상자를 힐끔 엿본 것 같았다. 내가, 그리고 세상이 열망하던 편리한 미래가 곧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사람들이 무조건 편하게만 살도록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인간 요인(human factors-인간의 지각, 주의, 기억, 학습, 스트레스, 생리,신체 등이 산업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전문가인 마크 영(mark young)과 네빌 스텐던(neville stanton)은 사람의 "정신적 업무 부담이 줄어들면 그만큼 인간의 집중력도 쪼그라든다"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작동할 때 저부하는 과부하보다 감지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훨씬 더 큰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140쪽)

 

네이버의 자동완성 단어 서비스는 검색창에 내가 찾고자 하는 단어의 첫 글자만 쳐도 완성된 단어를 미리 보여 준다. 내가 그 단어를 미처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선택할 수 있다.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지 않더라도 인터넷에서는 내용을 수월하게 검색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 중에 하나가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 도전을 해결하려고 애쓸 때 그런 노동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겠다는 동기도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프로스트도 알았듯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드는 것은 일(수단)이다. (…) 자동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스스로 스크린의 피조물로 전락해버릴 우리는 슈쉬왑 부족처럼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본질이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에 의해 정의되는데 만족해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341쪽)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생활을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문제점도 동반했다. 1995년, 원양 여객선 로열 머제스터호는 경로를 이탈해 좌초했다. 사고의 원인은 자동화에 기댄 ‘안심’이었다. 선원은 GPS에서 이탈한 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고, 컴퓨터의 신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현명하게 사용할 경우 자동화는 우리가 힘들고 단조로운 일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자동화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자동화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아주 능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충분하다 내지는 심지어 잠시만 멈춰라고 말해야 할 시기를 모른다. 경제적, 감정적으로 자동화의 장점에만 흠뻑 빠져 있을 뿐이다. (41쪽)

 

혹자는 이 순간에도 경쟁 상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장을 선도하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반드시 주춤하고 생각해야 한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저자 니콜라스 카는 여러 가지 문제와 예시를 제시하지만, 이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구하고 있진 않다.

 

자동화는 이미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삼자의 눈으로 가까운 미래를 방관한다면, 흐르는 시간에 미끄러지고 말 것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 이토록 끔찍하고 우울한 미래를 맞고 싶지 않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제한들(가격, 노동, 불확실성)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심사숙고하고 촬영대상에 진가를 깊이 음미하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 물론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 더 빨리 일할 수는 있었다. 그는 여러 장을 연속 촬영한 다음에 컴퓨터를 사용해서 그들 중에서 가장 멋있는 것 같은 사진들을 찾아내서 수정하면 됐다. (…) 처음에 이런 변화에 도취됐던 그였지만 결과를 보고 실망하고 말았다. 사진들은 정감이 가지 않았다. 그는 필름이 지각, 즉 보는 원칙을 부여해줬고, 그 원칙은 더 풍부하고, 더 예술적이고, 더 감동적인 사진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름은 그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했지만 결과는 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예전 기술로 되돌아갔다. (338-339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멜로니’님은?

정이 많은 디자인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양갱과 쭈꾸미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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