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 짖는 법을 잊었네

 

 

존 버거 | 《킹》 | 열화당 | 2014

 

《킹》은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킹은 그들 중 어느 한 부부와 함께 사는 개의 이름이고, 소설은 개의 시선에서 쓰였다. 존 버거는 화자 킹이 '개'라는 것에 군데군데 균열을 놓았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앤디 메리필드가 쓴 《존 버거(John Berger)》에 따르면, 존 버거는 이 소설을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의 노숙인 거주 지역을 본 후 썼다고 한다. 소설에 묘사된 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거처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숙인의 개념과는 다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노숙인’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정의가 없다. 노숙인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부각된 용어로 부랑인과 유사하게 사용되어 왔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일정한 숙소가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정의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국제연합(UN)은 노숙인을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총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노숙인', homeless person)

 

이 자료의 다른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생활하기 편하고,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이다.

 

얼마만큼 넘나들 수 있으며, 얼마만큼 당신을 체감하고 체화하면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번역된 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읽은 입장으로서, 이 소설의 초점은 '노숙인'에 맞춰져 있지만, 그의 글쓰기가 행하는 시선은 세상의 모든 하위계층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자신을 보편적인 존재로 여기게끔 억압하고, 그것에 공모하게 만드는 오늘날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목소리와 존재들을 은폐한 뒤에 세워진 삐뚤어진 세계인지. 그리고 온전히 낮은 곳의 그들이 된 존 버거가 얼마나 미려한 문장으로 그 목소리를 조용히 읊어주는지.

 

비코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들어 봐! ... 실수는, 킹. 적보다 더 미움을 받는 거야. 실수는 적처럼 굴복하지 않으니까. 실수를 물리치는 일 같은 건 없는 거야. 실수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만약에 있다면 덮어야만 하지.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그걸 잊으면 안 돼" (190쪽)

 

그들의 거주 지역인 생 발레리의 노부부 비코와 비카. 비코는 자신의 조상이며 위대한 근대인이라 일컫는 잠바티스타 비코(Giovanni Battista Vico, 1668~1744)를 여러 번 인용한다. 비코는 이렇게 말한다. "라틴어에 '후마니타스'라는 말이 있는데,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거야. 우리 조상님은 말이다. 킹,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단어가 '후마레humare)'라는 동사에서 온 거라고 믿었다. '묻다'는 뜻이지.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거 말이야. 인간성이라는 건, 그분의 생각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였어."(95쪽) 라틴어 '후마니타스'는 인간성, 인간애, 인류애를 뜻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시작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존경을 표했고 이성이 낳는 야만에 대해 경고했던 잠바티스타 비코, 그는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이 '신적 · 영웅적 · 인간적'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존 버거의 비코는 잠바티스타 비코를 인용하면서도 하나의 단계를 더 추가한다. 신 · 영웅 · 인간의 시대, 다음에 개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리르코시(I ricorsi, '짖다', '항의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옮긴이)!" (164쪽) 비코의 말에 따르면 후마니타스, 인간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후마레(humare)'는 킹, '묻다'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이제 사라져 버렸단다. 새 단어는 '박살내다'야. 박살내다. 박살, 완전히 보내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박살 내 버리는 거지." (191쪽)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존중이 살아있는 사람을 묻고 은폐하고 박살내어 버리는 것으로 바뀌는 시대. 인간의 시대는 끝났고, 개의 시대가 시작한 셈이다. "자유를 약속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을 죽이고 모든 것을 앗아 가 버리는"(192쪽) 야만 사이에 역사가 있었고 진행 중이다. 이 시대의 야만은 감각뿐 아니라 생각 자체에까지 침투했기 때문에 더 사악하고 잔인하다.(192쪽) 그들은, 그들의 '실수'인 하위계층을 묻고 은폐하여 스스로 공모하게끔 했다.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과 인간을 박살내는 인간 사이에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이 되어왔다. 야만의 무리는 무수히 발견되는 그들의 '실수'에 쉽게 고개를 돌린다. 앞서,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 이유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이며, 오래지 않아 그들의 실수가 될 것이다.

 

개의 시대, 짖고 항의하는 시대. 다시, 얼마만큼 당신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얼마만한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손쉬운 감정이입을 통한 어쭙잖은 이해와 공감의 폭력을 경계하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어림잡는 무거움을 탈피하면서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모든 어려운 질문들. 옮긴이 김현우 선생께서 번역 인세 전부를 노숙인 복지시설에 기부하였다는 사실과, 존 버거의 이 문장을 빌릴 수밖에. "말의 이중성.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모든 세 번째 말은 적어도 가슴에서 나온다." (207쪽)

 

"잠시 후 자신이 짖고 있다는 것도 잊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합창처럼 들리는 짖는 소리.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고, 제각각 또렷하게 들리지만, 너무나 또렷해서 가슴을 찢는 소리. 그 짖음은 이제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하다. 이렇게, 우리가 여기 있어! 라고. '우리 여기 있어!'라는 그 말이 거의 죽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그 기억이 밤바람에 다시 불꽃을 피우는 재처럼 살아나고, 함께 있었던 기억, 두려움, 숲, 음식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들이 거기 누워 짖고, 그 짖음에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는다. 사냥개 대니, 요아킴, 솔, 말락, 애나, 알폰소, 스피츠 리베르토, 보잉의 먼지 더미 속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는 모두 똑같았고, 모두 짖고 있었다." (204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mas’님은?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지, 또 당신과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때로 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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