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 나의 바다야

 

 

한창훈 |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 문학동네 | 2014

 

바다에 가면 눈이 떠졌다. 어딜 둘러봐도 사방은 건물뿐인 도시에서는 눈이 쉴 곳이 없다. 바다에 서서 파란빛을 보고 있으면, 하늘이 바다 같기도 했고 바다가 하늘 같기도 했다. 구름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상상이었다. 나는 구름에서 수영을 하면 바다가 하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란 그렇게 물구나무서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육지의 고기보다 나는 바다에서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생선은 제철에 꼭 먹어줘야 하는 의무감 비슷한 것도 있다. 특히 씹으면 바다 맛이 나는 굴이나 멍게를 즐긴다. 바다의 젖을 먹고 자란 생물은 바다를 온전히 품고 있다. 나는 바다의 맛을 보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하지만 스스로 바다에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화의 혜택에 익숙해져 있고, 정 외로우면 집 앞 카페에 가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문화의 혜택이 적고, 황량함 속에서 파란빛의 풍요에만 만족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바다는 그저, 가끔 찾아서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바다에서 태어나 쭉 자라고 바다에서 죽는다. 보통 그런 사람을 가리켜 어부라고 부르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일반화의 오류다. 시인도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죽을 수 있고, 소설가도 그렇고, 그냥 모두가 그럴 수 있다. 바다와 벗한 사람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고 사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외로움이 체질인 채 길러졌을 거라고, 나는 쉽게 추측한다.

 

쓸쓸함은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흥분되고 기대되는, 어쩌다 생기는 짧은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쓸쓸하고 외롭다는 것. 인류는 그것을 느끼고 자각하게끔 진화되어왔다. (68쪽)

 

제주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넌지시 내비쳤을 때, 제주 생활 2년 차인 지인이 내게 말했다. 토박이나 다른 곳에서 온 이주자들이나 많은 사람이 술병을 얻는다. 토박이들은 오로지 술로 외로움을 달랠 줄을 알고, 이주자들은 이질감과 갑자기 마주한 고독의 파도를 달래려 술을 마신다. 정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면 바다는 감동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눈부시던 황혼도 일상적인 풍경이 된다. 매일 보는 것이 매일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 말에 나는 제주를 향한 열병을 조금은 해소했다. 이방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생활의 지겨움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가진 것을 놓을 준비가 충분히 안 된 것이다. 그저, 좋은 것만 보고 부러움과 시기를 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무슨 얘기인지 쉽게 알 수 없다면, 한창훈 작가의 책이 도움된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외로움과 친구가 됐다. 가끔 배를 타고 아주 멀리 나가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도 바다다. 그 속에서 그는 고래와 북극곰과 말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본다. 다만, 그것은 달랠 길 없는 속병이다. 알면서도 자처하는 그야말로 외로움이 체질인 사람으로 길러진 작가다.

 

어쩌면 스며든 게 아니라 포획 당했을 수도 있다. 바닷가에서 볼품없이 홀로 이러고 있는 모습이 잡혀버린 고기와 크게 다를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은 감옥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곳이다. 술도 마시게 해준다. 그래서 스스로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73쪽)

 

알면서도 새삼 그의 삶이 질투가 나는 것은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일 뿐이다. 그렇게 외로울 수 있을까. 외로움이 그리워서 또다시 외로울 수 있는 건 그렇게 길러진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다. 작가의 글로 그 특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 평균 두 번 정도 바다를 찾는다고 한다. 애인과 헤어지고, 시험에 실패하고, 사업 망하고, 또는 그저 놀려고 온다. 뭐 그런 이유 아니라도 툭하면 바다로 간다. 왜 영화나 소설도 마무리가 어중간하면 바다가 보고 싶어, 운운하다가 찾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던가. 바다로 간다고 하면 적당히 용서된다. 그렇게들 와서 뭔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간다. 원망이나 절망, 집착, 또는 지루함 같은 것들인데, 그런 것들은 살면서 또 쌓이기에 다시 오게 된다. 우리에게 던져진 숙명은 근심이니까. 버림받은 것들이 스며드는 게 바다이다. 수심 4천 미터 이곳 아래에도 숱한 사연들이 떠다닐 것이다. (113쪽)

 

그는 오늘도 바다에서 술을 마실 것이다. 안주는 제철에 잡힌 좋은 고기가 아니라 잡어로 만족하고. 조만간 얻게 될지도 모를 술병을 걱정하지만, 역시 술을 마실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족할 것이다. 몸이 시리다. 아직 상처적 체질로 다져지지 않은 나는, 그냥 여기서 눈을 돌린다.

 

저 거대한 바다와 단둘이 있으면 사람이 상한다. 산은 품어주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는다. 그저 돌출시켜놓기만 한다. 견디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게 만든다. 견딘다는 것은 에너지를 허무하게 써버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 할 수 없다. 태어났으니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284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앨리스’님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며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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