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너를 기다렸어

 

 

서효인 | 《잘 왔어 우리 딸》 | 난다 | 2014

 

서효인 시인과 페이스북 친구다. 처음에 '부평'이라는 시를 읽고 좋아서 메모해둔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를 킥킥거리며 읽은 뒤 이름을 내내 담아두었다. 오은, 유희경, 정한아 시인 등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을 쓴 이들과 함께 그가 시작(詩作) 활동을 하는 동인이라는 것을 알고, 별생각 없이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누르다 친구가 되었다. 이 미미한 인연의 끈 덕에, 감사하게도 나는 출간보다 좀 더 빨리 서효인 시인과 은재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간간이 올라오는 그의 글에 나는 열심히 '좋아요'를 눌렀다. 당연히 그의 글이 무척 좋아서 그랬지만, 내가 좋아한 게시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은재와 서효인 시인의 이야기가 책으로 엮여 나온다기에 당연히 설레며 기다렸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조바심을 냈다. 읽을 얘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혹은 이미 읽은 내용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간 반짝이는 순간이 남아 있을까 봐. 너무 소중한 것은 차마 소중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이 조심스레 아껴두게 마련인데, 이 책이 꼭 그렇다.

 

서효인 시인의 딸 은재는 이른바 다운증후군이라 불리는, 보통 사람보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아이다. 이 책은 서효인 시인이 은재를 얻기까지, 그리고 그 후 아이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마주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장애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흔한 소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본' 것 말고, 일상에서 장애인과 마주칠 일이 많은가? 다운증후군에 대한 지식이란 고작해야 눈이 조금 올라가 있고, 표정이 없거나 찡그리며,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 정도다. 이것조차 확실치 않다. 미디어에 비친 일부일 수도 있으니.

 

서효인 시인 또한 은재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장애에 대해 다소 편견이 있었다. 혹은 장애를 잘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다. 한국은 정해진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든 것에 대해 절망적일 정도로 배타적인 나라다. 한국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에 따른 정서적 고통 또한 감내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는 가장이라는 무게에 더해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편견과도 싸운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야. 상상 속에 우리를 만들어 우리 밖 타인을 제외하고 멸시하지. 네 아이는 우리 바깥에 있어. 너도 그랬잖아. 어제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잖아. 네가 울타리 밖에 나앉을 거라고, 너의 아이가 보통의 아이, 평범한 아이, 누가 봐도 예쁜 아이가 되지 못할 거라고 털끝만큼도 예상하지 않았잖아. 이제는 어떻게 할 건데? 대답해봐.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지? (133쪽)

 

작은 심장을 갖고 태어난 아이, 구멍이 난 심장을 갖고도 있는 힘을 다해 숨을 쉬는 아이를 보며 그는 이 '느리지만 결국 다 해내는 아이'의 아빠가 될 것을 결심한다. 다음 쪽의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멈추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것은, 평생을 걸쳐 써내려 갈 한 아름다운 시집의 시작이다.

 

여러 책을 읽고 좋은 글과 보통 글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길.
악기를 다루게 되어 마음이 다쳤을 때 부드러운 음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온갖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며 이미 만연한 모든 폭력에 예민한 감성을 지니길.

나는 완전히 착각을 했다. 착각의 늪에 빠졌다. 그런 것들은 아이의 가능성이 아니다. 순전히 나의 바람일 뿐이다. 남에게 보이기 좋은, 혹은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것들만 모아서 아기의 작은 몸 곳곳에 문신처럼 새기고 있었지 뭔가. (…) 나는 나를 기대하기로 했다. 실망도 나에게 하기로 한다. 이 시기의 아이는 그저 찬탄의 대상이어야 한다. 나에게 우주처럼 넓고 별처럼 많은 가능성이 생겨난다. 기대감이 무너진 자리에, 아이를 맞이하는 건 처음이다. (103~105쪽)

 

좋은 구절이 나오면 책 낱장을 접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거의 모든 쪽을 다 접는 바람에 책 아랫머리가 두툼해졌다. 마음으로 쓴 글은 마음으로 읽게 된다. 온 마음을 다해 읽었다. 그리고 서효인 시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은재의 사진을 가만 바라보았다. 카메라 너머 그의 마음까지 조심스레 건너다봤다. 시인은 앞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음악과 유머가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열쇠'라고 했다. 《잘 왔어 우리 딸》은 마냥 신파로 일관하지 않는다. 절망의 순간에서 길어 올리는 그의 유머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난다. 눈물을 찔끔거리다 쿡쿡 웃으며 어쩐지 이 부녀의 이야기가 정말로 세상을 구원할지도 모르겠다고 믿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아이를 좋아하니까 내가 자라며 원했던 것, 해주고 싶은 것들을 가끔 떠올리며 아직 오지 않은 그 순간을 나름대로 셈했다. 이 책을 읽은 지금, 그 생각이 과연 누구를 위한 생각인 걸까 싶다. 아이와 나의 길은 각자의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때로는 헤어지고 서로를 북돋게 되리라. 어쨌든, 우리가 만난 순간의 이전과 이후는 다를 것이다. 좋은 책은 세상의 순간에 가는 다리를 놓는다.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다리를 건너, 은재와 같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런 순간이 있다. 세상에 없던 것이 생기는 순간.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이 빠져나오는 순간. 내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존재로 말미암아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순간. 순간이 아닌 순간. 그 순간. (75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재스민'님은?

사람이 궁금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이 책에 있었다. 책과 영화와 음악, 그리고 당신이 어우러지는 좋은 저녁이 매일 이어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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