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자》 - 난 내가 되겠어

 

 

너새니얼 호손 | 《주홍글자》 | 민음사 | 2007

 

1642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메이플라워호가 매사추세츠에 첫발을 디딘 지도 20년이 흘렀다. 이상 국가를 향한 초기의 흥분은 가라앉고 경직화된 청교도 신정(神政)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았다. 자유보다는 속박이, 포용보다는 편견이 보스턴 식민지사회를 짓누르던 시기였다.

 

새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인간의 덕성과 행복에 찬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 몰라도 으레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로, 또 다른 일부를 감옥터로 떼어 두는 것이 실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7쪽)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는 17세기 중반 미국 청교도 사회의 편협성과 부조리를 죄와 벌, 구원과 양심이라는 주제로 담아낸 역작이다. 지금에야 아이들도 아는 유명한 고전이지만, 1850년 출간 후 64년 호손 사망 전까지 판매량은 7,800부에 지나지 않았다. 청교도, 크게 기독교 교리를 폄훼하고 간음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금서로 묶여있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은 D.H 로렌스, 허먼 멜빌 등 당대 문학가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며 많은 평론가로부터 《모비딕》(1851년 출간)과 더불어 19세기 최고 미국소설로 뽑혀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장문의 설명이 가능하나 공통되는 해석, 이른바 죄와 벌-죄의 본질과 교정의 의미-에 대한 질문, 페미니즘 소설의 효시, 상징주의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살펴보며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서평가이자 고전평론가 이현우는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 “죄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벌이 있는 게 아니라 벌이 있기 때문에 죄가 있습니다. (50쪽)”라며, 죄와 벌에 대한 작품의 함의를 멋지게 짚어냈다. 이는 소설 초반 감옥에서 나온 헤스더 프린이 종교적 지탄과 비난에 당당하고 초연할 수 있던 이유다. 세상의 시선에서 그녀는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아이까지 낳은 불륜녀였지만 본인 내부에선 욕망 앞에 솔직하고 양심 앞에 떳떳한 진취적 여성이었다. 자신을 책망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에 수인(囚人)은 되었어도 죄인은 되지 않았다. 주홍 글자는 치욕이 아닌 순교의 상징이 될 수 있었고, 교정의 장치가 교정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

 

‘죄는 짓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것’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헤스더의 숨겨진 연인 딤스데일 목사의 고뇌를 통해 명확해진다. 그는 고결한 품성을 지닌 명망 높은 종교인이었지만, 그것이 멍에가 되어 과오를 숨기고 헤스더의 고난을 모른 척했다.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으로 영혼은 파괴되어 갔고 고백을 통해 마지막 구원을 얻었으나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그는 수인이 되지 못했기에 죄인이 된 인물이었다. 가슴속 주홍 글자는 내어 보일 수 없고 떨쳐 낼 수 없었기에 더 큰 치욕이 되었다. 한편, 헤스더의 전남편이자 복수에 눈이 먼 로저 칠링워스는 심판자가 되려 했지만,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되는 인물이다. 타인의 삶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벌충하려던 그는 깊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 복수의 대상이자 삶의 의미였던 딤스데일이 소멸하자 자신의 인생 역시 소각되는 운명에 처한다.

 

19세기 중반, 전통적 성 관념이 굳건하고 순종적·수동적 여성상이 여전히 장려되는 시기, 헤스더 프린이라는 주체적 여성의 창조와 진취적 삶의 묘사는 여러모로 페미니즘의 기치를 보여준다. 그녀는 신정체제의 청교도이건 가부장적 사회질서이건 누구의 명령이나 권유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각성하고 정화하는 의지를 지녔고, 꺾이지 않는 신념과 자기 철학을 가졌다. 죄의식으로 고뇌하는 딤스데일이나 복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칠링워스의 나약하고 편협한 남성성과 대치된다. 건실하고 현실적인 여성이다. 말년에 그녀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며 동네 여인들의 상담사로 자신의 경험과 삶의 혜안을 전하는데, 이는 여성 연대에 대한 좋은 시사점이 된다. 또한 그녀의 분신이자 희망인 딸 펄은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와 행동을 구가하며 미래의 여성상을 제시한다.

 

또한, 헤스터는 숨 막히는 종교적 계율과 사회적 규범이라는 인위성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아름답고 건강하며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유연했다. 그녀는 주홍 글자라는 형벌을 숲 속 오두막집에서 자연을 벗 삼아 홀로 사는 삶으로 대체했다. 관습과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인류애와 헌신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다. 권위자와 통치자들 앞에서 당당했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는 동화되었다. 끌려가지 않고 끌어내는 삶을 원한 헤스터의 적극성은 죄악의 징표인 ‘A'를 금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는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이는 주홍 글자의 의미 변화와 자연스레 연결되는데, 원래 간통(Adultery)을 의미하는 A는 능력 있는 여성(Able)을 거쳐 천사 같고(Angel), 경탄할만하며(Admirable), 사랑스러운(Amor), 예술적(Art) 여인으로 나아간다. (411쪽 해설 부분 참조)

 

모든 파도가 잦아든 후 노년의 헤스더는 옛집 오두막을 찾아 스스로 주홍 글자를 다시 가슴에 달았다.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는 낙인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두렵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어떤 상징”(311쪽)으로 주홍 글자를 완성해내기 위함이었다. 결국 헤스더의 비명(碑銘)은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로만 남게 되었다. A는 하나의 가치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신비로우며 진취적인 여성성의 상징, 헤스더 그 자체가 될 것이었다.

 

죄와 벌에 대한 깊숙한 함의와 페미니즘·상징주의 문학으로서의 진지한 고찰 모두에서 책은 잊히지 않는 각인이 되어 독자들 가슴 속에 선명한 ‘주홍 글자’를 남긴다. 내면의 왕국에서 도덕률의 창조자는 나라는 것, 개인의 양심과 의지를 초월하는 시련은 없다는 것 등 《주홍 글자》가 주는 가르침은 1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다시 50년 전 고전으로 이어지는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속 문구가 좋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고전은 고전으로 이해된다는 점, 고전을 읽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200쪽,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준솔파파님은?

서양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라는 열혈 독서가 중년입니다. 금융회사에서 홍보와 연수업무를 담당하나, 사내 책 동아리와 도서관 운영에 더욱 열심입니다. 서평 블로그 ‘준솔파파의 북북긁기’(blog.naver.com/tyworld76)를 운영하며 오늘도 열심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서평집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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