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쓰러지다》 - 산재를 신청합니다

 

 

희정 | 《노동자 쓰러지다》 | 오월의봄 | 2014

 

내 이야기이다. 유리컵을 깨뜨리는 바람에 손을 다쳤다. 일을 못하는 일주일 치 시급은 날아갈 테지만 병원비는 내 지갑에서 지급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손을 세 바늘 꿰맨 뒤 카드를 하나 받았는데 뒷면에 '勞'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노동자 재해보상 보험. 한국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리라. 그 후로 약 일주일간을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며 소독하고 붕대를 새로 감아 나왔다. 몇 년 전쯤 일본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부러운 건 솔직히 부럽다고 말해야겠다.

 

당시 손에서 피가 나자 동료들이 밴드를 가져와 붙여주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자 지배인은 병원을 수배한 뒤 스스로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웠었다. 《노동자, 쓰러지다》를 읽으면 딴 나라이자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무대는 한국이다. 뉴스와 신문에서 단신으로 처리되곤 하는 산재 말이다. 페인트칠 하다 코가 헐고 콧속에 혹이 생기며 진상 손님을 응대하고는 마음을 다친다. 시간이 없어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는가 하면 실제로 어딘가 다쳐도 산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다.

 

산재보험이란 일단 개인 비용으로 치료비를 부담한 뒤 신청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며,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까닭에 그마저도 신청할 엄두를 못 낸다.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때운다. 그리고 상처 난 몸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는다. 오늘날 전태일의 바보회는 없는 한국이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용광로 쇳물에 빠져 죽고, 감시원 하나가 없어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인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고 타이어 공장의 벤젠에 중독되어 사람이 쓰러진다.

 

2012년 조선소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6명. 1년에 광고비로 10조를 넘게 쓰는 대기업의 안전관리 비용은 천억 안팎. OECD의 최저임금 권고는 평균임금의 50%인데 비해 한국은 35% 수준. 한 해 평균 80만 명이 일하다 다친다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8만 명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위다.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덜 다치지만 많이 죽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사람이 죽는 것은 감출 수 없다 해도 부상당한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건강보험은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산재보험은 5조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이므로. 더군다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이렇다 할 호소를 하기도 어렵다. 그들의 고용구조가 하청에 하청 또 하청인 탓에 그렇다. 산재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순간 다음 계약은 없을지도 모르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변모하는 것 또한 요원하다.

 

2013년 2월, ‘알바연대’는 소위 '알바 오적'을 선정했다. GS25, 파리바게트, 카페베네, 롯데리아, 고용노동부. 「해당 기업들은 매출 규모가 급성장해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하는데 알바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 영세 가맹점을 양산해 알바들의 노동조건을 취약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334쪽, 이 오적에 고용노동부를 넣은 것이 눈에 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추천사와 서문만으로도 머릿속이 뜨거워져 열이 뻗친다.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지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그 논리는 박살이 나며 실제로 계급사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며(모른 척하며) 모르고 있지만(모르는 척하지만)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숨기거나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노동자이며 할아버지도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한 노동자였을 것이다. 나 또한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아니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노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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