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오스터 | 《글쓰기를 말하다》 | 인간사랑 | 2014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내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글이 그렇다. 왜 쓰는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나는 어설픈 동시를 끄적였고, 독서감상문 쓰기는 내겐 놀이와 같았다. 폴 오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는 《빵굽는 타자기》에서 말한다. 글쓰기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받는’것이라고.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선택 받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나이, 생김새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쓰는 것뿐이다.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은데 쓰고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을 쓸 때 두 가지 이상의 동의어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한 문장을 잘 쓰기 위해 하루 이상 고민한 적이 있는지, 잘 썼다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이 글쟁이로 지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 해봐도 좋겠다.

 

물론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누구나 노후가 보장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얻는 거라곤 마음의 평화 정도인데, 그 평화마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망가질지 모른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장은 단연코 5장 ‘손으로 쓴 원고’다. (책 내용이 길어서 일부분만 읽고 싶은 사람에게 5장을 추천한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방법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의 전체 내용이 여기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폴 오스터의 영화’를 얘기 하는데 할애된다. 시나리오는 당연히 폴 오스터의 몫이고, 그가 감독 또는 투자까지 겸하는 영화도 있다. 그가 투자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카메라 감독과 동선을 체크하고, 역에 적합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미술감독과 소품을 사러 다니기도 한다. 그 작업을 즐거워하면서도 영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결국 글이 더 오래 갈 것이라 예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산업도 상상력보다 높이뛰기는 힘들다.

 

혹자는 “오독의 권리를 남용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야말로 문화산업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는 작가들이 파업하면 마비될 정도라지 않은가!) 소설이나 시 등은 물론,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광받는 문화 산업도 결국 ‘글’에서 출발한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그렇듯 모든 이야기는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변신할 수 있다. 글쓰기는 ‘마술봉’이다.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식산업사회, 문화산업사회라 하니 나에겐 마술봉을 제대로 휘두를 일만 남았다. 휘두를 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오늘의 책을 리뷰한 'YAMUYAMUBOOKS'님은?

감동도 잘 받고 상처도 잘 받고, 칭찬도 잘 하고 욕은 더 잘 한다. 창조적 언어체계 형성에 일조하고 싶으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소설창작에 관심이 많고, 시나 칼럼 쓰기도 좋아한다. 언젠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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