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가즈오 이시구로 | 《나를 보내지 마》 | 민음사 | 2009

 

《타임(TIME)》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이런 찬사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면, 어쩌면 《나를 보내지 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영화를 보았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건 이미 본 영화에 대한 복기이자, 영화와 원작 소설의 차이점을 찾는 오디세이였다고나 할까. 영화 《아일랜드》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말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여주는 원작 소설의 깊이는 남달랐다.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로 러브스토리와 우정에 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수 작품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주인공 캐시 H.는 클론 즉, 복제인간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론이 등장한 여느 SF 소설과 다른 변별점을 지향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용어라든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화려한 서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캐시를 비롯한 루스와 토미가 엮어내는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그들은 영국 모처에 존재한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에서 ‘사육’되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장기를 근원자에게 기증하고 죽어야 한다.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직면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기술문명이 발전하고 무병장수 영생의 시기가 도래해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최근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물질만능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만연한 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나와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영혼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증자인 루스와 토미를 철저하게 타자로 분리한다. 인간은 클론의 운명을 몰라도 된다는 식의 사고야말로 끔찍하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셤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것처럼 헤일셤을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삶이 곧 완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게 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자기 머릿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는, 약 기운과 통증과 피로감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밤 동안 나의 기억과 자기 기억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17쪽)

 

헤일셤에서 유대감을 가지고 성장한 캐시와 루스, 토미는 여느 인간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16 세가 되어 헤일셤을 떠나 코티지에 정착한 그들은 비로소 세상과 접촉한다. 고립된 헤일셤 출신들은 다른 기증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성인이 되기 전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민과 갈등 또한 치열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어렴풋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증폭되고, 자신의 삶이 궁극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설계되었다는 가혹한 운명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동안, 캐시와 루스, 토미는 왜 영화 < 아일랜드 >에 나오는 클론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옥죄는 운명을 피하려면 도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나. 성장, 잠깐의 병간호 생활 그리고 기증과 종료(completion)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고리는 인간의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들의 자유의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인간과 다른 결정적 차이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386쪽)

 

영화는 확실히 소설과 많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중요한 에피소드의 핵심 위주로 빠르게 진행된다. 노퍼크 여행에서 따로 남겨진 캐시와 토미가 절벽의 벤치로 뛰어가는 장면과 뭍 위에 올라온 배를 찾아가는 미장센은 탁월했다. 소설에서도 역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는 노래, 주디 브릿지워터(judy bridgewater)의 ‘Never Let Me Go’의 애절함도 영화가 잘 담아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소설을 권하고 싶다. 독서에 가속도 붙을 뿐 아니라, 영화에서 미진하게 다룬 부분도 충분히 보충된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SF 클론 소설의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기대했다면, 독자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모든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한 방도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클론,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윤리적 이슈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한다. 그래서였을까, 에밀리 선생님이 소설의 끝자락에서 ‘사육’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너무 불편했다. 가끔 진실을 관통하는 직언은 그렇게 육중한 무게로 영혼을 타격하기 마련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에 나온 캐시의 말 또한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근원자의 삶이 클론인 캐시의 삶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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