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혹은 여행처럼》 - 그래 어디든 가자

 

 

정혜윤 | 《여행, 혹은 여행처럼》 | 난다 | 2011

 

독서에도 시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책을 처음 꺼내든 건 약 3년 전이다.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드러누워 이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에 당시의 나는 잡념이 많았다. 그렇게 덮은 지 3년이 지났고, 다시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다. 이 책 좋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지인에게 연락할 정도로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푹 빠져 버렸다.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다양성 속에 이미 살고 있음을, 나아가 그 다양성은 존재들이 저마다의 삶의 환경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려 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나를 사로잡았다. (191쪽)

 

얼핏 책 제목만 보면 저자가 어딘가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펼쳤다. 여행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공간을 이동한 여행기가 아니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놀랐던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다양성 속에 이미 살고 있음’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고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딧물을 연구하는 박사님의 이야기가 특히 놀라웠다. 아주 작은 생명체를 연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세계에 매력을 느껴 묵묵히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 대단했다. 나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가. 조금만 알아주지 않아도 이내 서운해 하고, 감정을 다 토로하는 내가 그 작은 생명체 앞에서 부끄러웠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절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경우, 안주할 경우, (…) 여행지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포기 ‘뒤’에, 선택과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141쪽)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청년 소모뚜의 이야기. 그는 자신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많은 부분에서 포기를 더 많이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안타까웠다. 내 안에도 그런 이기적인 존재가 도사리고 있고, 언제든지 튀어나올 것을 알기에 소모뚜의 선택과 포기,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끈기와 인내 속에서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한다고 슬퍼”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어떻게 보면 인터뷰집 같기도 한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다양한 여행을 했다. 저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한 여행을 나 또한 경험했다. 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타인의 인생이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어딘가로 떠나야 여행이고, 그곳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야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현재 살아가는 이 삶이 충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그 여행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 나는 앞으로 자신에 더 충실한 여행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언제 또 이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볼 것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 (192쪽) 라고 했듯이 이렇게 살아가는 내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여행자의 첫 출발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안녕반짝'님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기뻐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깊은 밤에만 독서할 수 있지만, 그 고요한 시간이 오로지 나만의 것인 듯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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