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알리스 사라 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 | 《스캔들》 | DG | 2014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고민은 대개 ‘오랫동안 존재해온 대상’을 다뤄야 한다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사람들은 중요한 작품들 정도는 이미 줄줄이 외우고 있고, 새로운 녹음이나 연주자들을 대할 때면 기대감보다 ‘그래, 한번 해봐라’ 하는 식의 귀찮음을 전제로 한 채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연주된 작품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창작되고 초연되는 음악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의도적으로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10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새롭게 발표되는 작품에 관심을 가졌고, 매우 활발하게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주고받곤 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러한 ‘피드백’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공연장에서는 애호가보다 전공자들(대부분 억지로 끌려온 학생들)이 더 많고, 졸다가 박수를 반복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이전보다 사회·문화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보기도 쉽지 않다. 논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감히 나에게? 내가 교수인데?’ 따위의 마인드로 논쟁 자체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건전한 의미의 자극과 음악적 충격은 사라졌다. 옛 레퍼토리를 진부한 형태로 연주하거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아무 재미도 없이 의무적으로 초연하는 경우만 남아버렸다. 말로는 늘 ‘새로운 것(혹은 음향?)을 추구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지만, 현실은 그러한 소통의 대상이 되어줄 정도로 치열한 문제의식을 지닌 관객이 아예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관객은 왜 없는 걸까?

 

사실, 관객은 정말 좋은 음악이 있으면 당연히 오게 돼 있다. 그런데 그들을 잡을만한 쇼킹한 무언가도 없고, 이슈를 만들어낼 만한 뜨거운 것도 없다. 현대의 창작자들은 ‘순수예술’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관객과의 거리가 멀어 질대로 멀어진 상황까지 오게 되었고, 과거 세대에 비해 그 어떤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그것을 봐줄 만한 사람마저 없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창작자들이 제아무리 혼자서 혁신을 외쳐봤자 아무 소용없다. 창작자는 관객과의 거리를 지금보다 좁힌 상태로 만든 다음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때 관객들은 그에 맞게 반응할 것이다.

 

독일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와 룩셈부르크의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Francesco Tristano Schlim?)가 최근 내놓은 「Scandale」 음반은 이러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이 시대 음악인의 고민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 음반은 과거의 일처럼 취급되는 스캔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것이 지금 시대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재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질문의 근원은 20세기 초반 무대 연출가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의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흥행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치밀한 수단으로 ‘예술’을 흥행에 이용했다. 그는 온 유럽을 뒤흔들어 놓을 위력을 발휘했다. 디아길레프가 초연을 총괄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초연무대에서 충격을 받은 관객들에게 온갖 야유와 비난을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 유럽 문화계에 큰 파장을 불러와 훗날 장 콕토에게 “온갖 스캔들이 벌어졌던 장소”로 회고되기도 하였다. 또한 「셰헤라자데」는 디아길레프가 위촉한 ‘발레 뤼스’가 파리에서 첫 공연을 할 때 무용음악으로 선택했던 작품이다. 당시 화려하고 이국적(당시 서유럽인들의 시각에서)인 무대연출로 매우 화제가 됐던 작품이고,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실린 라벨의 「라 발스」 역시 디아길레프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품이며 온갖 현란한 음향효과와 화사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미래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예견하는 듯한 혁신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듣게 될 첫 번째 곡인 「A Soft Shell Groove」는 트리스타노가 직접 작곡한 작품이다. 21세기에 등장한 댄스음악의 리듬들을 차용한 이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혁신적인 음악’이다. 실험적이고 재미있다. 물론 트리스타노가 작곡에만 매진하는 음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성(특히 다이내믹)의 측면에서 다소 일차적이고 단편적이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딱지를 달고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과감하게 첫 곡에 선보인 트리스타노와 음반사의 모험심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특히 팝을 연상시키는 표지 디자인과 “Scandale”이라는 단어를 크게 뽑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포인트 역시 매우 흥미진진하다. 더 이상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야가 배 나온 할아버지 지휘자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피아니스트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사람을 잡아끌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트리스타노의 외침이야말로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앞서가고 변화했던 음악가들의 몸부림이 아닐까.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24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