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텅 빈 야구장에서

 

 

박민규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한겨레신문사 | 2003

 

새나라의 어린이는 밤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TV가 알려주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밤낮으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하자 많은 집과 아픈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관리하고 건사하시며 차곡차곡 빚을 갚아나가셨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메뚜기, 사마귀를 잡고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그리 멀지 않은 시내에서 이따금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당을 함께 쓰던 옆집 할머니도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이놈의 최루탄냄새” 하며 불평하셨지만, 작은 마루 자리를 보존하며 놀러 온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밤 9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가며 어머니와 TV를 보다 보면, 결국 시간을 넘겼다. 그럼 난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닌가 보다, 하며 9시 뉴스까지 봤다. 9시 뉴스엔 어김없이 '땡전뉴스'와 그래프가 들어간 경제 기사가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종종 들렸던 어머니의 탄식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가 그리 좋지 않나, 어린 마음에도 걱정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시며, 자녀들의 학비 대부분을 지원받았다. 아버지의 노고와 어머니의 알뜰함 덕에 우리 집은 빚을 다 갚았다. 동네에서 거의 처음으로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를 장만했고, 이어 아버지 생애 처음으로 자가용을 장만하던 시절이었다.

 

이후에 겪은 모두의 고난을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시대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했다. 노동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모두 살아갔을 것이다. 책이 덮인 후 이어진 시간을 따라 현재로 와 봐도, 분주함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낭떠러지까지 굴러가야 했던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가속도를 감내하고 달린 사람들이 행복해지거나 달리 여유가 늘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변해가는 환경에 무언가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지침을 말해야 하는지, 지쳐서 이제 그만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다.

 

이제 좀 천천히 가볼 수 없을까? 관성 때문인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조금 두렵다. 낭떠러지의 실체 또한 분명치 않다. 달려봤자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아는데, 왜 실체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일까? 사실 책을 다 읽었다는 이유로 이런 독후감이나 쓰고 있는 나 역시 두렵다. 나는 여전히 두려워 속도를 늦추지 못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야구단이 '복원야구'에서 깔끔하게 지고, 텅 빈 야구장을 차지했을 때, '마치 재구성된 지구의 대륙처럼 그 봄의 텅 빈 홈그라운드'에서는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 발걸음을 가다듬고 속도를 줄인다면, 현실 속 인생도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이미 오래된 의문 앞에서 답은커녕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민욱아빠'님은?

현직 외과의사입니다. 서울에서 수련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내려와 생활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제주이민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많은 의미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계급적인 견지에서 일상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그 고민들이 삶에 녹아들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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