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가을에 삽을 씻고

 

사진: 고규홍 (출처: http://www.solsup.com)

 

저문 가을에 삽을 씻고

 

나뭇잎이 붉어지는 것은 한 해 노동의 결과다. 나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양분을 만들기 위해 다른 어느 부분보다 잎사귀들은 애를 썼을 것이다. 그의 노동으로 나무는 한해살이를 무사히 마치고 이제 서서히 겨울나기 채비를 해야 한다. (…) 단풍나무나 화살나무와 같이 안토시아닌 성분이 더 많은 나뭇잎에는 빨간 물이 올라온다. 나뭇잎은 한 해 동안의 모든 노동의 수고를 접고 서서히 숨어 있던 색깔 요소들을 불러내 빛의 잔치를 벌인다. 그런 뒤에는 서서히 나무와 이별하는 낙엽제를 치른다. (고규홍,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 휴머니스트, 2014)

 

나무들이 알아서 붉어지거나 노랗게 변할 때면 괜스레 숙연한 기분이 듭니다. 세상사 모두 지켜보는 것도 벅찼을 텐데, 어느 겨를에 기약이라도 한 듯 작년 이맘때의 제 색으로 돌아오는지. 위에서는 잎사귀가 애를 쓰고 아래에서는 기둥이 그 애씀을 기억하여 서로 의존하고 소통하는 나무의 노동이 다부져 보입니다.

 

똑같이 ‘노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인간의 노동이란 왜 이렇게 모질어야 할까요?

 

일을 하여 얻는 만족이 아니라 생산을 지휘하는 사회관계에서 얻는 직장과 배경, 직책과 승진 등의 지위가 되었다. (…) 노동이 생산성을 내고 존경할 만한 가치를 획득하려면 전문가가 노동과정을 계획하고,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런 노동이라야 표준 방식을 따라 전문가가 공인한 필요를 제대로 만족시킨 노동이라고 입증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 걸음, 2014)

 

공존하려 애쓰는 자연계와 달리, 인간 사회는 서로 밀치기 바쁜 것 같습니다. 아니, ‘사회(社會)’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낱낱의 사람들은 스스로 울타리를 두른 채 그 안에서 계급을 가립니다. 53세의 경비원을 분신자살로까지 몰아간 주범은 동 아파트 주민의 몹쓸 언행이었습니다. 자살은 다행히 기도에 그쳤지만, 그가 직면치 않아도 됐을 부당한 대우와 처사는 한 인간에게 상처로 박혔습니다.

 

자본이 자신의 삶을 사막화하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하는, 노동자들의 자기회복을 위한 광범한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 일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또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노동자들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병훈 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창비, 2013)

 

신분과 자본에 근거를 둔 관계만이 거듭되는 것 같아 쌀쌀해진 날씨가 더욱 매섭게 느껴집니다. 메마른 땅에서도 꿋꿋이 절정에 달한 단풍을 바라보며. 노동의 기쁨은 자연계에서만 순수하게 허락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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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_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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