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의 사계》 - 또 보자

 

 

 

고규홍 |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 | 휴머니스트 | 2014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솔숲(http://www.solsup.com) 주인이기도 한 나무칼럼리스트 고규홍의 편지를 읽는 것이다. 며칠 전, 나무 편지에 새 책 출간 소식이 전해졌다.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라는 책이 그것도 봄?여름을 묶어 한 권, 가을?겨울로 한 권. 이렇게 두 권이나 큼직하게 제작돼 나온다는 소식이다. 충남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에는 1만 5000종류가 넘는 식물이 살고 있다. 저자 고규홍은 15년간 벗한 천리포 수목원의 식물을 월별로 묶어 조심스럽지만 성의를 다하여 소개한다. 저자의 자세가 꼭 나무처럼 올곧아 보인다. 책이 나온다고 적힌 그날 편지에선 초록이 더욱 빛났다.

 

 

고규홍이 고르는 낱말들은 대체로 생경하다. 다른 곳에서는 식물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을 말들이 책에서는 나무와 꽃을 비옥한 땅처럼 보듬는다. 나는 낯설어서 마음에 든 단어의 뜻을 찾아 수첩에 옮겨 적었다. ‘수굿이’는 ‘고개를 조금 숙인 듯이’, ‘흥분이 꽤 가라앉은 듯이’, ‘꽤 다소곳이’라는 뜻이다. 고규홍은 ‘수굿이’를 가져와 나무를 이렇게 대한다. “수굿이 찾아가 한 떨기의 풀꽃을 더 바라보고, 한 그루의 나무를 더 살갑게 어루만졌다.”(5쪽) ‘톺다’는 말은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는 뜻이다. 고규홍은 나무의 정체를 알려면 꼼꼼히 ‘톱아’보라고 편지나 칼럼에서 자주 말한다. 뛰어난 글 솜씨는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재주이기도 하겠으나, 나무와 꽃에게 가장 알맞은 말을 심어주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짐작된다. 식물의 정확한 명칭, 종(種)까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때면, 좋아하는 것 앞에선 집요함마저 근사해 보인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으로 그에게 다가가 ‘잊히지 않는 하나의 몸짓’으로 남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에게 가장 알맞춤한 이름을 찾아서 불러주는 일, 그것은 그에게 다가서는 첫걸음이다. (189쪽)

 

나는 얼마 전 책상 위에 작고 튼튼한 나무 하나를 들였다. 성한 식물을 사놓고 그대로 유지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아무 말 않되 물끄러미 바라보며 식물을 대하려 해도 잘 안 된다. 이름을 아는 꽃과 나무 앞에선 조금이라도 아는 티를 꼭 내고야 만다. 파인애플을 닮은 걸 보아 소철과의 한 종 같으나 살 때 이름을 묻는다는 걸 깜박했다. “더디게 자라니까 물은 조금만 줘.”라는 말만 기억난다. 이름을 부를 수 있기 전까지 ‘수굿이’ 지켜볼 수밖에. 매일 말없는 인사만 건넨다. 내일 또 보자고.

 

식물은 결코 서두르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여유를 갖고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깊어가는 가을의 어느 날, 꽃 지고 돌아보는 이 없어 쓸쓸해질 꽃무릇 한 번쯤 더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59쪽)

 

| Editor_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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