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 씁쓸한 나의 도시

 

 

찰스 몽고메리 |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 미디어윌 | 2014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개인이 처한 문제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믿음이다. (…)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개인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므로. 조화로운 삶을 살려면 반드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토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이 또 있을까? 인간은 주위 환경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복잡한 도심과 조용한 공원에서 하는 생각이야 다를 것이다. 도심 중에서도 도로를 마주했을 때와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얘기하는 것이 또 다를 것이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마음을 수양하며 주위를 잠시라도 애써 잊는 것이 올바를지, 그게 아니라면 모든 길은 자동차를 위해 존재하는지, 상가 진열대로 쓰이는 것인지, 책을 읽으며 많은 의문에 부딪쳤다.

 

디즈니랜드에서 평생 살 수 있더라도 고대 아테네인들이 생각한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느끼려면 화려한 건물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꿰뚫어보고, 마스코트 인형을 쓰고 지시받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디즈니랜드를 유지하는 도시시스템에 참여해야 한다. 디즈니랜드는 현실에 존재하며, 방문객들은 디즈니랜드를 둘러싼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54쪽)

 

낯설다는 것을 두 가지로 가름해 본다. 정말 새로운 것을 처음 봐서 낯설거나, 늘 보던 것이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거나 둘 가운데 하나다. 나는 늘 보던 것에서 낯섦을 느낀다. 내가 사는 인천은 어떤 도시인가. 해안선을 둘러싼 산업 단지, 항구, 아파트 단지, 모든 모습이 낯설다. 왜 늘 보던 것들인데도 생소했을까? 내가 여태 바라본 것은 그저 그림일 뿐이었다. 한 장의 그림이 보이고 잠시 멈춘다. 다시 한 장의 그림이 보이고, 멈춘다. 계속되는 운동이 지쳐 감각을 잃어버린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쳤던 감각도 살아나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움직임이 둔하다. 보이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눈을 뜨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시 수많은 움직임 속으로 빠져들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눈을 뜨기로 마음을 먹는다. 감각을 잃는 것보다 고통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마운틴하우스 지역에는 주민 5천 명이 살고 있지만, 작은 도서관 하나, 학교 둘, 작은 편의점 두어 곳을 제외하면 변변한 직장도, 편의 시설도 없다. 마운틴하우스에 사는 성인들은 대부분 새벽에 집을 나와 밤에 집에 돌아온다. 차고에 차를 집어넣고 문을 닫고 더 이상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낮에 마운틴하우스에 남는 사람은 아이들뿐이다. 따라서 이웃 주민들에 대한 랜디의 신뢰 부족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환경이 강요한 결과다. 주민들이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장시간 이동하도록 강요하는 도시 시스템이 주민들끼리 일상적인 사회관계를 맺는 데 써야 하는 시간까지 잠식해버렸다. (87~88쪽)

 

예전에 빌라에 살 땐, 적어도 같은 동 빌라에 사는 사람은 다 알았다. 10여 년 살던 빌라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 온 지 꽤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낯선 사람들을 본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3배 정도 늘었을 뿐인데, 이웃의 얼굴을 보기가 참 힘들다.

 

책을 보니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일이 생각났다. 현재 직장은 집에서 꽤 가까워 날 마다 가족과 함께 저녁도 먹고 여유가 늘어 행복하다. 이런 모습을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출퇴근 시간만 네 시간이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이웃과 마주칠 일도 없었다. 쉬는 날에는 부족한 잠을 자기 일쑤이니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모질게 먹고 직장을 옮겼다.

 

도시가 인간의 이동 방식을 결정하는 것처럼 인간의 이동은 도시 형태를 결정한다. 얀겔은 한가지 이동 방식(이를테면 개인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에 맞게 도로를 설계하면, 도로는 그 이동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경우 운전자들)로 채워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관계는 반대 방향으로 더 유효하다. 더 많은 사람이 개인 승용차를 운전하는 선택을 내릴수록 도시 시스템은 점점 더 운전자 편의를 위해 바뀐다. 이러한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도시 풍경이 바뀐다. (285쪽)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는 참으로 불안했다. 인천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혹여 있더라도 서울에서 일하는 것과는 벌이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옮기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것 외에 얻는 게 더 많으니 벌이의 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침마다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싣고 일터로 가는 인천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아니 더욱 그렇다. 아니, 도시에서 지내는 처지가 어떤지 알면서도 늘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도시를 만드는 힘은 가끔 너무나 압도적으로 보인다. 부동산 산업의 막강한 힘, 용도지역제의 독재, 관료주의의 관성, 도시 스프롤 시스템의 관성에 직면하면 움츠러들기 쉽다. 그럴 때 도시문제 해결은 정부 관료들이나 할 일이라고 떠넘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이러한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끔찍한 실수이다. (473쪽)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영원의 건축》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사진조각'님은?

사진 껍질 속을 볼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자국 찾기. 책으로 사진을 살펴보며 오직 사진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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