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 나 정말 너무 살고 싶었는데

 

 

루이지 피란델로 |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 문학과지성사 | 2010

 

"나는" 이라는 실존재에다 자신의 이름에 고(故)를 붙여 부존재를 병치시킨 형용모순적인 책 제목에 강하게 이끌려 책을 펼쳤다.과연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경이로운 의문이 들었다.

 

고향을 떠나 있던 내가, 저수지에서 투신자살로 추정, 시신이 발견됐다 하고, 아내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될 사람에 의한 신원 확인으로 나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것을 계기로 세상의 모든 일들로부터 해방이 된 듯 자유를 만끽하며 살다가 곧 그 자신은 이 세상에 아무 실체도 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끝내 자신의 실존을 찾아 허위 죽음으로부터 회귀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슬픈 현실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는 용모와 이름을 바꾸고 세상의 모든 책임에서 벗어났다. 자유로운 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일말의 회귀 가능성도 없이, 삶에서 영원히 쫓겨났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렇게도 자유를 원했지만, 오히려 자유를 얻은 자는 어느 불쌍한 익사자의 주검을 제 남편으로 몬 자신의 아내였다.

 

결국 그는 자유를 포기하고 원래 이름이었던 마티아 파스칼을 찾기 위해 또 한 번의 죽음을 감행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미 재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아내까지 포기하고 혼자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가 바라는 건 오직 이 세상에서 내 신분증을 갖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그 하나일 뿐이었으니.

 

망자의 무덤에 참배하면서 "당신은 누굽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고(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저자 루이지 피란델로는 자신의 문학론을 담아 '상상력의 치밀함에 대한 주의'라는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희곡에 대한 비평가와 관객들의 비판에 반박했다.

 

"삶의 부조리들은 있을 법한 일들로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반대로 예술의 부조리들은 진실로 보이기 위해 있을 법한 일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 있을 법하다는 것은, 더는 부조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그는 소설을 소설 자체로 받아들이길 바랄 뿐 휴머니티라는 이름으로 현실과 결부하여 평가하고 재단하는 비평가들을 극도로 경계한다. 저자의 명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내용에 대한 논란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걸작이었다.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한 번쯤은 그런 일탈을 꿈꾸어 봄 직하지 않은가?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이다"

잊고 있던 또 하나의 진실을 깨우치니 문득 슬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낙화'님은?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삶의 참 뜻을 찾고자 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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