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준이치의 일기

 

히가시노 게이고 | 《변신》 | 창해 | 2005

 

가상의 일기내 이름은 나루세 준이치이다. 나는 나를 잃었다. 잃어간다. 그리고 곧 사라질지 모른다. 이제 와 누구를 원망하는 게 무슨 소용 있을까.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두통이 조금 잠잠해졌다. 내 안의 그가 잠시 활동을 멈춘 시간이리라. 완전히 내가 없어지기 전, 일기를 쓰기로 한 건 잘한 일 같다.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을 때, ‘나’에 대해 기록하는 일. 그것이 나루세 준이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수 있으니.

 

세계 최초의 뇌 이식 수술 성공. 언젠가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났다. 가만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대상이 나였으니까. 나는 결코 수술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랬겠지.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직후 정신을 잃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으니. 의사들은 그들끼리 고민했다고 한다. 나를 두고. 뇌 이식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뇌에 꼭 들어맞는 1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또 다른 이의 뇌를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방금 막 죽어 들어온 이의 머리를 열고 온기가 가시지 않은 ‘적합한 뇌’를 구할 수 있는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운명처럼 내게 딱 맞는 뇌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의학계의 큰 획을 그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확신에 가득 찬 채 내 머리를 열어 재꼈겠지. 수술용 칼을 쥔 박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더럽고 추악하다. 얼룩진 욕망과 성공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겠지. 너희가 저지른 오만방자함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가. 역겹다.

 

의사의 거짓말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그들은 내게 치명적인 두 개의 거짓말을 했고, 들켰다. 하나는 뇌를 기증한 '도너'에 대한 것. 나머지 하나는 수술이 성공적이라는 것. 수술의 실패와 성공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 대상인 내가 변화했으니까.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네 목숨줄도 건재하진 못 했을 거다. 그 어떤 변명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루세 준이치이다. 분명 ‘나’라는 한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어떤 이에게 ‘나’란, 상품 가치가 있는 실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 이하도 이상도 아닌 연구 대상일 뿐이었다. 피라미드 최상위를 차지하는, 그자들은 어떠했나. 거대한 힘을 가진 자들에게 나는 실험 대상 그 자체도 못될 것이다. ‘불량품’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값을 지불한 물건’ 정도일까. 나를 배신한 그 여자, 사랑을 위장해 내게 접근했던 그녀도 결국 나를 감시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상관없다. 그들이 어떻든, 분명한건 내 안에 작은 불씨로나마 나루세 준이치의 인격이 살아있는 한. 나는 나이다. 내게 이식된 뇌. 그 주인에게 점령당해 내 육신도 그의 것이 되고, 내 정신도 그가 차지한다면, 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이 나루세 준이치의 삶이 계속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내 삶을 지속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울부짓는 어느 동물의 소음이 시끄러워 대가리를 잘라버리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루세 준이치라면. 그토록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제 없다. 뇌세포 속, 살아 있는 도너의 ‘정신’은 어떤 것보다 치명적이다. 더 이상 나는 생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 메구미를 진심으로 껴안지 못하고 거짓으로 웃음을 날리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언제 또 그의 정신이 나를 지배할지 모르겠다. 두렵다. 끝내고 싶다. 내가 나일 때.

 

소설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나루세 준이치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그’에게 이입되어 가상의 일기를 작성해본다. ‘그’가 되어 심정을 헤아리고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책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도너’에 대한 발상 때문이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도, 배경이 무수히 많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오직 나루세 준이치의 뇌 이식을 전후로 인간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문득 소설을 읽으며, 박사가 준이치에게 던졌던 질문을 내게 던져 본다.

 

‘준이치의 인격이 변한 건, 도너의 영향일까. 준이치 안에 내제하였던, 절대로 밖으로 꺼낼 일 없었던 밑바닥의 것이었을까.’라는 그 의문. 만약 준이치에게 내제했던 것이라 전제한다면, 나의 저 밑바닥에 봉인된 것은 무엇일까. ‘내게도 누군가의 뇌를 이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선택권이 내게 있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자문자답해본다. 주인공이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존엄성’과 ‘인격’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존엄사’까지 확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늦은 저녁 단막극 한 편을 본 기분이다. 때마침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드라마가 제작. 방영 중이란다. 소설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됐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소설의 여운을 달랠 수 있을까.

 

“그건 죽는다는 거야. 살아 있다는 건 단지 숨을 쉰다든지, 심장이 움직인다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 그건 발자국을 남긴다는 거야. 자기 뒤에 있는 발자국을 보고,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똑똑히 아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에 내가 남긴 발자국을 보아도 도저히 내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 20년 이상 살아왔던 나루세 준이치는 이미 어디에도 없다고!” (300쪽)

(...)

 

“새로운……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까? 이 세상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
“다시 태어나는 것과 조금씩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달라.” (301쪽)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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