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쓸데없기에

 

 

도정일 |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문학동네 | 2014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을 방법은 인간의 체온을 가진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그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자본, 주주, 투자자들을 함께 고려하자는 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고객, 노동자, 투자자, 하청업체와 대리점, 사회 공동체, 환경이 그 여섯 가지 가치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한국인의 집단적 신년 소망은 천사처럼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의 불안한 짐승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생의 난바다로 자꾸 떠밀려가는 중년의 나이가 되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부표가 되어 흔들리게 된다. 이때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은 살아가는 이유이자 실존의 문제가 된다. 인생이라는 바다가 처음에는 블루오션일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치열한 생존경쟁의 레드오션으로 변해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사상과 중심이 바르게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인생 후반전은 부침 속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공자가 말한 '불혹'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 아니다. 불혹은 엄밀히 말해 그 어느 때보다 유혹이 많아지는 나이다. 2006년 인문학의 위기설 이후 인문학은 줄곧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삶이 더욱 곤궁해지고 사회는 피폐해져 가는 가운데 이제 인문학은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 인간의 최고 가치로 여겼던 '행복'과 '희망'이 더욱 낯설어지는 사회, 보이지 않는 위대한 가치들이 한없이 쓰잘데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사회에서 도정일 교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떠올려보게 한다.

 

산길 옆에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 밑에는 어미 벌레가 알을 까놓은 도토리 열매가 있다. 도토리의 영양분을 충분히 먹고 자랄 수 있도록 어미 벌레가 온몸으로 나뭇잎을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어미 벌레의 희생 덕에 새끼 애벌레는 새와 다른 벌레의 위협을 피해 안전하게 성충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지평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 생존법칙으로 고귀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앎'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혹을 넘어서야 나는 삶이 무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임을 알았다. 인문학은 읽으면 읽을수록 이제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을 참혹하게 깨뜨려 준다. 새로운 무지에 대한 자각, 그것이 앎의 출발점이다. 도정일의 글은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고 세상 모든 쓰잘데 없는 일들을 모조리 고귀하게 만들어 준다. 인문학이 안전한 항로로 삶을 인도해주는 등대 역할을 하듯 도정일의 글은 무지의 앎을 통찰로 바꾸어 준다.

 

고통과 불행은 그 자체로는 결코 예찬할 것이 못 된다. 많은 경우 고통은 무의미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삶이 고통과 불행을 수반한다는 것 역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세계의 현실이다, 만약 행복의 추구가 불행의 완벽한 제거와 고통의 완벽한 회피에 목표를 둔다면 그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의 기원이 된다. 완벽한 행복의 추구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삶의 진실이 아니며, 인간 사회의 도덕적 이상도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 (본문 중에서)

 

철학은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인문학은 너와 나라는 관계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문학은 쌍방향 이해의 장을 마련하여 철학과 정치, 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거짓과 허위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껴안는다. 상식과 건전한 판단으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불혹의 학문이다. 도정일은 인문학이 정말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삶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그 질문의 거울 앞에 서게 하는 것, 그게 우선 인문학의 가치라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사람들이 한 번밖에 없는 삶을 가치 있게 살려고 고민하기 시작할 때 여기 사회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드림모노로그’님은?

세 살때 사라진 허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중인 꽃중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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