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 - Wrong, 언론의 시대

 

 

알랭 드 보통 | 《뉴스의 시대》 | 문학동네 | 2014

 

뉴스와 오래 시간을 보낼수록 몹시 익숙해지게 될 두 가지 감정은 두려움과 분노다. (59쪽)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매 순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뉴스와 기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야말로 ‘뉴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뉴스는 흘러넘치는데, 그중에 좋은 뉴스 찾기란 너무나 어렵다.

 

야구장을 떠올려보자. 뉴스를 던지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 서 있고, 나는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타석에 올라와 있다. 초구는 그냥 지켜봤다. 아뿔싸! 공이 장난이 아니다.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는 날아오는 뉴스들에 매몰될 지경이다. 이것은 한 타석의 삼진으로 곱게 끝날 수준이 아니다. 교묘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뉴스들에 대응해 나는 커트를 해내든지 헛방망이를 휘두르지 말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그렇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선구안’이다.

 

그래서 모셔왔다. 오늘의 타격코치는 바로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 등의 작품으로 이미 날카로운 상황 판단력을 보여준 전적이 있다.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해외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좋은 코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뉴스의 시대》라는 매뉴얼을 들고 온 것이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알랭 드 보통은 말하고 있다.

 

뉴스가 어째서 중요하냐고 묻는 건 뉴스가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하려는 게 아니라, 보다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하려 할 때 얻게 되는 보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 이 기획은 뉴스에 대한 일종의 유토피아적 접근을 포함한다. 단지 뉴스가 현재 어떤 모양새인지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뉴스라는 것이 언젠가 이룩하게 될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려 했다. (17쪽)

 

역시 단순한 타격코치가 아니었다. 우리가 타석에서 어떻게 '뉴스'를 받아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는 《뉴스의 시대》를 통해 우리에게 다른 관점에서도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과연 내가 투수라면 어떤 ‘뉴스’를 던져줘야 타자에게 정확히 갈 것인지. 정정당당한 승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뉴스’란 어때야 하는지를 말이다.

 

《뉴스의 시대》에는 상대 투수에 대한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오늘날 뉴스는 인간의 두려움과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원근감을 흔든다. 나아가서는 깊이 상상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까지도 일정한 틀에 가두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코치님은 우리가 '뉴스'를 통해 단순히 새로운 사건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날아오는 볼의 끝만을 봐서는 좋은 공을 칠 수 없다. 투구 폼, 투수의 성향, 선행 주자의 유무와 그 주변의 아주 많은 것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뉴스'를 받아들일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건들의 단면을 많이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의 배경과 역사,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뉴스의 시대》를 통해 코치님이 바라보는 뉴스와 대중 사이의 관계는 조금 흥미로웠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코치님은 마치 그 둘의 사이를 극성 엄마와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바라보고 있다. 《뉴스의 시대》 곳곳에서는 대중을 깨우치기 위해 아무래도 뉴스가 직접 밥숟가락을 들고 대중의 입속까지 떠 넣어 줘야 한다는 식의 뉘앙스가 보인다. 코치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뉴스란, 저널리즘의 중심을 '빠르고 정확하게'에서 '깊고 재미있고 친절하게'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읽혔다. 곧 '대중의 진정한 관심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 앞으로 뉴스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뉴스의 유토피아에 관하여 디스토피아적인 우려가 먼저 들었다. 《뉴스의 시대》에서 코치님이 말하는 ‘대중’은 그저 관심 가는 뉴스가 없어서, 혹은 자신만의 기준을 잘 잡지 못해서 각성하지 못한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책임을 오롯이 뉴스에만 전가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쓴 PR의 고전서, 《프로파간다》에서도 말하듯, 언론이 이 지경에 다다른 데에는 이용하려는 자들의 의도대로 이용당해버린 대중의 본능과 심리도 한몫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아래 댓글을 보자.

 

참 좋은 기사네요. 물론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
스압 ㄷㄷㄷ 기자가 가독성 따위는 개한테 줘 버린 듯, 누가 세 줄 요약 좀

 

누구나 한 번쯤 포털사이트 기사에서 보았을 법한 댓글이다. 웹페이지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대체로 진중하게 읽는 행위에 대한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길고 진지한 기사는 이렇게 외면받거나 조롱당하기 일쑤다. 선정적이면서 말초적인 기사들이 오히려 환영을 받는 세태. 질이 낮은 뉴스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게다가 기사의 트래픽은 곧 언론사의 수입이 된다. 쿵짝이 서로 맞는 것이다. 기자를 ‘기레기’라 부르기 전에 나의 마우스는 어느 기사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볼 일이다.

 

더 나은 뉴스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깊고 재미있고 친절한' 뉴스만큼이나 자신도 '읽고 생각해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숟가락으로 떠먹여 줘도 소화를 못 시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뉴스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뉴스의 시대》와 함께한 이번 훈련 한 번으로 뉴스를 대하는 나의 선구안이 불쑥 자라나길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요행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타석에서 뉴스를 맞이할 때는 조금 더 집중력 있게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은 놓쳐도, 최소한 머리로 날아오는 빈볼은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 말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32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녹색양말’님은?

지질한 것은 무엇이든 좋아합니다. 언제나 남의 이야기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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