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골든 제2집》 - 예술가들에게 송창식이란

 

송창식 | 《송창식 골든 제2집》 | 이엔이미디어 | 1996

 

7월 25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 박재현의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4년 3월호부터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이후 새롭게 이어지는 글은 월간 이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이 열광했듯 많은 예술가들도 송창식을 환호했다. 그의 남다른 삶의 방식이 예술가의 어딘가를 자극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은 무엇보다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길 원했고, 그 결과 우리가 잘 아는 몇몇 작품들이 잉태되었다. 사실 나는 거물과 거물 혹은 천재와 천재의 만남을 좋아한다. 가령,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의 만남이라든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만남처럼. 그래서 나에겐 송창식과 다른 예술가와의 만남이 더 흥미롭다.

 

가장 유명한 ‘고래사냥’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작가 최인호는 영화 시나리오를 다 만들어 놓은 후 송창식에게 곡을 요청했다. 이 곡은 송창식을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 놓은 동시에 대중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되어 지금까지도 수없이 불리고 있다. 시원한 후렴구도 압권이지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라는 도입부의 가사와 멜로디도 정말 백미 중의 백미다. (아니, 술 마시고 춤을 춰 봐도 슬플 수밖에 없다니, 이보다 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송창식 하면, 서정주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복수 전공하며 시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시인으로 활동 중인 담당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시’ 하나로 본다면 저는 서정주 시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정치적인 부분을 제하고 과연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 싶지마는 그의 시보다 더 시다운 시는 없어 보인다. (‘동천’이라는 시를 떠올려 보라. 시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송창식이 중학생일 때 서정주 시인이 그의 학교에 초청되어 강연한 적이 있었다. 이때 시인의 시 짓는 방법을 듣고 송창식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인기 가수가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우연히 서정주 시인의 집에 들르게 되었고, 친분을 쌓았다.

 

나는 둘의 만남이 궁금해 물어보았다. “저를 종종 부르셨죠.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에게 시를 한 편 보여 줬어요. 여기에 곡을 붙여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만들어 갔더니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곡이 바로 ‘푸르른 날’이다. 사실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이거나 가수에게 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만큼 송창식을 인정했던 건 아니었을까. 역시나 이 노래도 훌륭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가사에 그가 우렁차게 내뱉는 발성이 어우러진 이 곡은 가요 이상의 가곡과도 같은 여운을 준다.

 

또 송창식의 서울예고 1년 선배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내고 현재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은 80년대부터 여러 차례 송창식과 작업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를 송창식이 부르는 식이었다. 몇 달 전, 카페 무대에서 그런 곡 중 하나인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를 부른 송창식은 이렇게 말했다.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대중가요 하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잘못하다 쫓겨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대중 가수인 그와 작업을 했을까? “송창식만 부를 수 있는 노래거든요. 그가 아니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황색 예수의 노래’라는 곡은 송창식 외에는 소화할 사람이 없어 초연 이후 아직까지 공연한 적이 없다.

 

협업까지는 아니지만, 송창식을 최고로 여기는 예술가(음악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예고 동창이었던 지휘자 금난새는 학창 시절 천재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송창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 당시 나는 이에 대해서도 가볍게 물어봤다. “그렇지만 금난새가 지휘자 됐지, 나는 안 됐잖아요. 음악 쪽으로는 난 천재가 아니에요. 아마 공부 쪽으로 한 이야기였을 거야. (그는 학창 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이야기가 공부 쪽으로 흘러갔지만 그는 성의껏 얘기해 줬다.) 시험공부를 일부러 해서 하는 건 비겁한 일이라 생각했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것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한계가 있더라고. 집에서 예습, 복습하는 애들을 이길 수가 없어. 더군다나 수업 시간을 빼먹으니깐 안 되더라고. 공부를 안 하고 잘하는 건 고1 때까지야. 더 잘하려면 공부를 좀 해야 돼.”

 

이선희는 송창식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자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4분이라는 노래 안에 이토록 넓은 세계를 담아내는 게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수가 되기 전에도 좋아했지만, 가수가 되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됐다는 것 아닌가.

 

박완규는 가수가 된 후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완규야, 너 높은음 빽빽 부른다고 다 가수가 아냐. 송창식 노래를 한 번 들어 봐. 그냥 듣고 연습해 봐, 그래서 네가 저 사람처럼 노래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널 가수로 인정하마.”

 

현재 가장 가까이에서 송창식을 마주하는 함춘호의 생각은 어떨까.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시 인터뷰 말미에 했던 내 질문에 그의 답은 이랬다. “좋은 분이죠. 그러니까 음악에 대해서도……. 제가 어릴 적 음악에 눈을 뜰 때 저의 영웅이었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듣는 귀가 달랐는데, 소위 말해 음악적인 거, 폼이 있는 거 하셨잖아요. 그게 나한테는 너무 잘 맞았고, 구성이 복잡했고……. 또 성악을 했기 때문에 기타를 치면 너무나 교과서 같았죠. 그 뒤 기타에 눈을 뜨게 됐으니 나의 영웅인 거지. 같이 옆에서 한 지 이제 14년 됐는데 형식과 장르가 없어요. 선생님 음악이. 그냥 노는 거지. 다양하게 놀고 싶은 대로 따라가는 거죠. 말하자면 놀이터 같은 존재에요. 커다란 놀이터에 마당을 만들어서 ‘너 놀아봐.’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하죠. 그래서 다른 데서 형식적인 음악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재현'님은?

87년생으로 단편 소설 '허전한 목을 채우고'로 데뷔했고 장편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잡지 「월간 이리」에서 송창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 여행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할 예정이다. 여전히 엘피를 고집하며 클래식, 재즈, 오래된 가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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