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 오래된 예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체르노빌의 목소리》 | 새잎 | 2011

 

안타까운 사고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이때에 이 책을 읽으니 기분이 두 배로 우울해진다.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사고들, 당사자들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포의 순간들을 왜 직면해야 하는 것일까.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 끔찍한 일들을 몸소 겪었던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용해된 우라늄과 흑연이 지하수에 들어가지 않도록 원자로 아래에서 지하수를 빼내야 했소. 우라늄과 흑연이 물과 섞이면 임계질량(핵분열 연쇄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의 최소질량)이 형성되기 때문이었소. 폭발력이 3~5메가톤쯤 됐을 것이오. 키예프와 민스크만 초토화할 뿐 아니라, 거의 유럽 전체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으로 변했을 것이오.” -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소볼례프 (공화국 협회 < 시트 체르노빌류 > 부대표) (238~239쪽)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코맥 매카시의 《로드》가 상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라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생명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잿빛의 도시. 죽음만이 우리들의 영혼을 영원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절망의 땅. 그러니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닌 ‘우리의 미래’, ‘미래의 연대기’다.

 

“사람들이 발전소로 가까이, 원자로로 갔다. 사진을 찍으러 갔다. 집에 가서 자랑하고 싶었다. 두려움과 동시에 뿌리칠 수 없는 호기심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하지만 나는 아직 아내도 어리고 해서 안 간다고 하고 굳이 모험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술은 200그램씩 마시고 거기로 갔다. 그렇게…. (잠시 침묵한다) 살아서 돌아왔다. 그래서 괜찮은 거라 생각했다.” (112쪽)

 

사람들은 핵폭탄은 무서워해도 발전소의 핵은 평화적 핵이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 핵발전소가 들어온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로 안전하게 지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국가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사고가 터진 거다. 막상 핵이 터졌다는데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니 뭐 그냥 그렇고 미약한 가스 유출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니 발전소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오는 것이다. 거기에 독주를 마시면 괜찮다고 하니 술을 마신다. 보이지 않으면, 공포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 환경단체가 수집한 통계를 보면, 체르노빌 사건 후 150만 명이 사망했다. 벨라루스는 485개 마을을 잃었다. 그중 70개 마을은 땅속으로 영원히 매장됐다. 러시아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20만 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왼쪽에서 체르노빌 사고가 났고, 오른쪽에서는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저 먼 산만 바라본다. 내 문제가 아니니까? 이 동네가 아니라 저 나라 사정이니까? 체르노빌 사고 당시 핵 구름이 나흘 만에 아프리카와 중국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한국에도 21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그러면 또 누군가 말하겠지?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하는 우리 원전 기술은 절대 안전하다고.

 

소련 핵에너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물리학자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는 “크렘린 궁전 바로 옆 붉은광장에 세워도 된다”고 말할 정도로 자국의 원자력 발전소 기술력을 자랑했었다. 원전 위로 비행기가 떨어져도 끄떡없고, 가장 강력한 지진 규모 8.0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다던 세계 최고 일본 원전도 규모 9.0의 강진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당신네 선량기사들은 왜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야? 모스크바에 있는 일리인 교수에게 이미 자문했다네. 다 정상이야. 군인과 군사 장비가 투입되어 처리하는 중이고, 정부 위원회, 검사국이 발전소에 파견됐어. 다 해결돼가는 중이야. 지금 냉전 중이라는 점을 잊지 말게나. 사방에 적이 깔렸어.” (360쪽)

 

“사람의 나라가 아닌 권력의 나라였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데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생명의 귀중함은 온데간데없다.” (361쪽)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5년 후, 어린이 갑상샘암 발병이 30배 증가했다. 선천성 기형, 신장과 신장 질환, 소아 당뇨도 많이 늘었다. 10년 후, 벨라루스인의 평균 수명이 55세로 줄었다. 나는 역사를 믿는다. 역사의 심판을 믿는다. 체르노빌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했다.” - 바실리 보리소비치 네스테렌코(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 (367쪽)

 

자, 이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화적 핵은 군사적 핵과는 다를 거라는 환상을 버리자. 뛰어난 기술에 따르는 재앙은 더 무시무시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자. 핵은 한번 엎어지면 되돌릴 수 없는 지구 종말의 불쏘시개다.

 

400여 페이지 가득히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려줄 수조차 없는 자연이 겪었을 끔찍함은 어떡하나? “사람은 자신만 구하고 나머지는 다 배반했다” (17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8eight '님은?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딸바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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