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물리학》 - 빛 속으로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 《빛의 물리학》 | 해나무 | 2014

 

밤하늘을 올려보는 취미가 있다. 도시의 불빛들이 사라지는 시간, 새벽 2시쯤 베란다에 앉아 북한산에 드리운 별빛을 구경한다. 그중 구름에 살짝 가린 달빛을 구경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이런 취미가 생긴 지 고작 2~3년밖에 안 된다. 그리고 이제야 궁금해졌다. 저 하늘에 걸린 달이 왜 지구에 떨어지지 않는지를 말이다. 학생 시절 배운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이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알아도, 입시 위주의 교육 문제로 인해 이 공식에 담긴 우주의 비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연히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빛의 물리학>(총6부작)이 첫 방영 이후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는 뉴스를 접했다. 궁금한 마음에 챙겨봤다. 제목 그대로 우주 탄생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빛을 좇았던, 위대한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물리학 이론을 영상으로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상 속에서 끊임없이 환기되는 주제, ‘모든 것의 시작에 빛이 있었다.’는 과학에 접근했던 기존 태도의 재고를 요청한다. 그러다 깨달았다.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과학은 저 옛날 고대 시절에는 철학의 한 분파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파스칼, 데카르트 등은 철학자인 동시에 과학자(수학자)이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과학이란 인간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상상력으로부터 삶의 비밀을 밝혀온 분야다.삶의 비밀은 곧 우주의 비밀이고, 우주는 곧 하나의 점으로 존재했던 '빛'에서 탄생했다. 모든 만물이 탄생한 그 시작점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했다. 그 시작에 있던 빛을.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거울을 들고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면 거울 속 자신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갈릴레오는 빛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밤하늘을 바라보며 상상했다. 뉴턴은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들이 지구로 쏟아지지 않은 이유를 상상했다. 닐스 보어는 가장 큰 세계 우주가 실은 가장 작은 원자의 세계와 비슷할 것이라 상상했다. 다시 아인슈타인은 상상했다.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 역사의 시작점까지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설명체계(공식)를 인간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방영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빛의 물리학》은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스위스 베른 특허국의 직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가 1905년. 그의 나이 27살 때였다. 그로부터 11년 후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문제까지 포함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다.

 

빛에 관한 단 하나의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론은 우리의 사고체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보이지 않고 가보지 않았기에 상상할 수 없던 영역까지 인간의 사고가 가닿은 놀라운 순간이 펼쳐졌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주변 공간을 휘어지게 한다. 뉴턴 이론으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라고만 설명됐던 중력이, 실은 시간성을 담보한 가속도와 같은 것이라는 이 위대한 상상력은 단숨에 세상을 3차원에서 4차원으로 확장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각각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사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

 

이는 오로지 빛이라는 단 하나의 궁금증에서 출발한 발견이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갈릴레오가 움직이는 배 안 선실에서 제자리 뜀박질로 아주 쉽게 증명한 이래로, 빛에 관한 과학자들의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우주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니, 인간 상상력이 고작 우주의 문 앞에 도착했다는 증거밖에 되지 못했다.

 

상상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공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양자역학이다. 가장 큰 세계 우주와 가장 작은 세계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것은 생명탄생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는 얘기와도 같다. 그런데 모든 물질의 최소 입자인 원자는 우주가 그랬듯, 자신의 세계를 쉬이 보여주지 않았다. 닐스 보어는 중성자와 결합한 원자핵 주변으로 전자가 궤도를 갖고 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자의 움직임과 위치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이에 그의 제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여기서 전자의 궤도를 지워버렸다.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만난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를 가지고 격렬하게 토론했다. 우주 탄생의 진실이 두 개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의견충돌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믿었다. 만물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공식이 하나 있다고. 인간이 아직 그 공식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갈릴레오는 빛을 좇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빛이 속도를 가진다고 짐작했다. 이 사실은 자신이 개발한 망원경으로 밤마다 우주의 별빛을 관찰하면서 얻어졌다. 뉴턴은 빛에 모든 만물의 색이 숨어있음을 발견했다. 맥스웰은 빛이 파동임을 알아냈다. 빌헬름 뢴트겐과 마리 퀴리는 빛이 입자 상태임을 증명해냈다. 그렇다.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불변의 속도를 가진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였다.

 

이 같은 사실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현재로서는 누구도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게다가 전자가 구슬 모양이 아니라 끈 모양이라고 현대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일명 끈이론은 우리 앞에 우주 탄생의 비밀을 속 시원히 밝혀주는 단 하나의 공식이 될 수 있을까? 이 또한 지금으로썬 알 수 없다. 빛으로 된 작은 점에서 첫 번째 빅뱅이 일어나 지금의 우주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또 다른 우주가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빅뱅 이전에도 시간은 존재했을까? 답은 없고 질문만 끝없이 이어진다. 

 

때문에 아직도 상상력은 유효하다. 그들이 그랬듯, 우리 또한 빛을 좇는 여행자로 살아야 한다. 그 상상의 시간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득 우주 만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그 공식이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정말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오늘 밤에도 별들은 내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아직 풀지 못한 비밀을 간직한 별빛만이 쏟아지겠지. 그야말로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다.
  
                                     빛 과거로부터 온 소식이다. 
                                   가볼 수 없는 우주의 비밀 가지고 우리에게로 온다. 
                                                  현재에 붙잡힌 우리는,
언제까지나 
                                                              빛을 동경한다.

                                                                    (53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진격의두통'님은?

열심히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24시간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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