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uk Chin: 3 Concertos》 - 자신만의 색깔로 우뚝 서다

 

 

진은숙 | Unsuk Chin: 3 Concertos》 | Universal | 2014

 

지난 5월 베를린. 지휘자 정명훈이 오랜만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기연주회 무대에 올랐다.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을 첫 곡으로 연주한 정명훈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 D장조를 마지막으로 연주하며 베를린 청중들과 인사를 나눴다. 연주회 자체에 대한 현지의 평가는 다소 엇갈리기는 했지만, 프렌치 레파투아를 가장 잘 연주하는 지휘자인 그가 독일음악계의 심장부인 베를린에서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정면승부를 걸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다.

 

앞서 연주회의 곡목을 말하면서 빼놓은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중간휴식 이전에 연주되는 협주곡에 대한 것이다. 이날 연주된 협주곡은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 진은숙의 최근 작품(2009년 작곡, 2013년 개작)인 「첼로 협주곡」이었다. 사실 진은숙 작곡가의 작품이 처음부터 독일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독일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작품을 써 왔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오히려 독일을 제외한 국가들에서 더 인정받고 많이 연주되었다. 그녀 자신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다소 섭섭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몇 차례 피력한 바 있기도 하다. 그랬던 그녀가 드디어 독일 음악, 나아가 세계 음악계를 주도하는 베를린의 필하모니 홀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자랑스럽게 선택한 작품이 바로 첼로 협주곡이었던 것이다.

 

이번 DG-서울시향-정명훈과의 작업을 위해 녹음된 협주곡은 총 세 작품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과 앞서 소개한 첼로 협주곡(알반 게르하르트의 협연), 그리고 생황 협주곡(우웨이 협연)이다. 아마도 같은 곡의 수많은 명반들이 경쟁상대로 버티고 있는 고전, 낭만시대의 레퍼토리들을 녹음하며 음반 시장에서 아슬아슬한 정면승부를 하고 있는 서울시향으로서는 또 하나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 음반은 오로지 서울시향과 진은숙만이 할 수 있는, 상당히 독특한 느낌의 음반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출신이면서도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보다 개인적이면서도 국제무대에서 보편화된 음악어법에 기반을 두고 작품을 쓰는 작곡가가 ‘한국과 서울의 대표 브랜드’처럼 커 나가고 있는 서울시향과 자신의 작품을 녹음했다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편성에 더해 동양의 악기인 ‘생황’을 협주곡의 영역에 끌어들인 것 역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진은숙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 각 부분이 긴밀하게 연결된 높은 수준의 형식미, 빠르게 미끄러지며 위아래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다층적인 성부들의 조화, 까다로운 목관과 타악기의 음색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리듬의 다양성도 놓치지 않는 관현악법 등이 그것이다. 진은숙의 작품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의 음악적 어법이 상술한 요소들과 함께 점점 고착화되어 간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서로 다른 독주 악기들과 반주부가 들려주는 기본적인 음색의 차이로 인해서 이런 우려는 많이 해소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가장 맨 첫 번째로 수록된 「피아노협주곡」(1996/1997)은 작곡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지만, 신선한 활력과 밀도 높은 긴장감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내에 있는 서울시향의 리허설룸에서 집중적인 연습과 정밀한 마이크 테스트 끝에 완성된 녹음의 선명도가 압권이다. 덮이는 소리 없이 개별적인 악기와 성부의 미세한 움직임을 정확하게 잡아내야 하는 현대음악의 특성상 이 부분은 상당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사실 이 음반은 ‘진은숙’이라는 개인보다 ‘서울시향’이라는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는 과정의 일환으로 제작된 음반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의미에서 세계시장을 겨냥하든, 학구적인 목적으로 녹음하든 ‘현대 창작음악’이라는 분야는 음반을 만드는 쪽에서도 쉽게 결정하기 힘든 일이다. 대중들 또한 낯설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듣는 이의 귀를 확 끌어당기는 소리로 가득한 이 음반이 하나의 기회가 되어 앞으로 진은숙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능 있는 작곡가들의 작품이 크고 작은 레이블들에서 더 많이 녹음되기를 희망해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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