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문장 노동자의 올해 농사 - 시인 장석주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책들이 제 내면의 텃밭에 사유의 씨앗들을 파종하는 것이죠.” 장석주는 독서를 농사에 비유하고, 책 읽는 즐거움을 파종 후 거둬들인 ‘이삭’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실제로도 시골에서 조그만 밭을 가꾸며 생활합니다.

 

장석주를 아는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묵묵히 책을 읽고 쓰는 그를 가리켜 ‘문장 노동자’라고 합니다. 침묵과 무(無)에 다다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른은 청춘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혼자가 된 노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장석주이기 때문에 묻고 싶었던 질문들입니다.

 

침묵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고, 많은 말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침묵으로 일군 텃밭에 올해는 어떤 이삭이 쌓일지 그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1986년에 쓰신 산문집 《내 스무 살 푸른 영혼》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욕심 없이, 무(無)에 대한 한 편의 아름다운 글을 써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 애초의 결심의 실패와 좌절의 흔적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 산문집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검을 어디에서 구할까》서문에서도 변한 건 없습니다. “말을 줄이고 줄여서 침묵에 닿고자 했던 내 의도가 이루어졌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8쪽, 서문 중에서) 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동안 정말로 많은 책을 내셨는데, ‘무(無)’와 침묵에 다다르는 일은 여전히 실패했어요.

 

장석주 | 마흔 해 째 글을 쓰며 70여 권의 책을 썼는데요. 결국, 이것들은 궁극의 목적지가 아니라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정(道程)이란 생각이 듭니다. 궁극의 목적지는 ‘침묵’이나 ‘무’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마도 선불교의 책들을 읽고 선사들에 대해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갖게 된 생각이겠지요. 어렸을 때 최인훈 선생의 책을 읽으며 그토록 많은 책들을 읽는 것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을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라는 구절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저 역시 이렇게 많은 말들을 쓰는 것은 결국 무와 침묵에 이르기 위함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침묵’과 ‘무’에 다다르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면 안 될 꿈일까요?

 

장석주 | 제겐 말이나 문자를 쓰는 자가 갖는 멀미 같은 게 있어요.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이것들 역시 무나 침묵에 견줄 때 그 불완전성이 두드러지거든요. 최근에 읽은 존 그레이의 《동물들의 침묵》에서 “동물에게는 침묵이 자연적인 휴식의 상태이지만 인간에게는 내면의 소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동물은 타고 난 권리로 침묵을 즐기지만 사람은 내면의 소동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받으려고 침묵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침묵’과 ‘무’에 관해 쓰기를 성공했다면, 그 책은 시인 장석주가 세상에 내놓을 마지막 저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석주 | 그렇죠. ‘침묵’과 ‘무’에 대한 궁극의 책을 쓸 수만 있다면, 그 순간 더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살 것입니다.

 

그때까지 침묵을 경청하는 시도는 계속 하시는 거죠?

 

장석주 | 제 삶은 ‘침묵’과 ‘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묵’을 경청하는 것은 지혜로운 삶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입니다.

 

‘문장 노동자’, ‘독서광’, ‘다작(多作).’ 이름 앞에 일종의 ‘호(號)’처럼 붙는 말들이 당신이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줘요.

 

장석주 | ‘다작(多作) 한다’라는 말에는 결국 많이 쓰기 위해 ‘질’을 희생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과 질책이 희미하게 깔려 있습니다. 저는 굳이 ‘질’을 추구한 적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애써 ‘양’을 추구한 적도 없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몇 자씩 적어나갑니다. 그게 모여서 책이 되는 것이지요.

 

책을 쓴다는 건 이제 ‘의식’이 아니라 부지런한 생활에 잘 맞는 ‘습관’이 된 건가요?

 

장석주 | 네, ‘습관’이고, 더 나아가 존재 안의 결핍들을 채우기 위한 생명의 자연스러운 ‘리듬’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항상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해가 뜨기 전까지는 삽살개와 함께 산책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시는데도 당신의 글에선 밤의 어둠과 고독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읽혀요. 잠이 많이 없는 편이신가요?

 

장석주 | 잠이 많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충분히 자지 않으면 종일 몸이 쳐져요. 그래서 잠은 늘 충분히 자려고 노력합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니까 자연스럽게 새벽 일찍 눈이 떠집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이 생체 리듬에 맞아요.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전엔 일하고, 오후 서너 시쯤에는 만사를 제쳐 놓고 반드시 산책을 나갑니다.

 

독서에 관하여 쓰신 문장이 기억나요.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거창한 소명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한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까닭.”(50쪽, '독서' 중에서) 쉬지 않고 책을 쓰는 까닭도 '즐겁기' 때문일까요?

 

장석주 |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불이(不二)의 세계지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떤 글도 쓰지 않았겠지요. 날마다 책을 구해 읽으니, 그것들이 제 안에서 융합을 이루며 글의 촉매 역할을 합니다. 책들이 제 내면의 텃밭에 사유의 씨앗들을 파종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 일이 즐겁다고 했지만,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 그런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희귀한 사례입니다. 대개의 즐거움은 추후의 이삭들이지요. 쓰는 것은 즐겁다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쓰는 것의 즐거움 역시 그것을 끝낸 추후의 사태입니다.

 

당신의 문장에 ‘계절’이 담길 땐 그 문장들이 예뻐서 밑줄을 꼭 그었습니다.

“밤 중에서도 겨울밤이 고독과 침묵을 가장 많이 기른다.”(97쪽, ‘벼룩 씨, 당신의 밤도 길겠지?’ 중에서) 라는 문장이나, “봄은 겨울 속에서 꾸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105쪽, ‘오는 봄이 가는 봄이다’ 중에서) 라는 문장, "봄이 오면 모든 금지를 금지하자. 봄이 오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115쪽,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검을 어디에서 구할까' 중에서) 같은 문장들이요. 단순한 질문이지만,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

 

장석주 | 젊었을 때는 여름을 좋아했어요. 여름에는 의욕이 솟구치고, 곳곳에 활력이 넘치잖아요. 여름 아침, 작열하는 햇빛, 울울창창한 숲, 토마토, 수박, 바다, 수영…… 따위 여름에 속한 것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은요?

 

장석주 | 이젠 잔잔하고 조용한 봄이 좋습니다. 모란과 작약의 꽃대가 올라올 때, 봄밤 먼 숲에서 소쩍새 울 때. 정말 좋습니다.

 

어렸을 땐 화가의 삶을 꿈꾸셨었죠?

 

장석주 | 네, 중학교 때 미술부에서 활동을 했어요. 파스텔이나 수채화 물감을 갖고 그림을 그렸어요. 제법 잘 그린다는 칭찬도 들었고요. 그런 습관이 20대 초반까지 이어져 유화도 꽤 그렸지요. 그 그림들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림은 늘 가보지 않은 길과 같이 아련한 세계입니다.

 

요즘도 그림을 그리세요?

 

장석주 | 안성에 내려와서도 화가들을 벗으로 사귀며 그의 공방에서 목판화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먹을 갖고 하는 수묵화를 배우고 싶어요.

 

누군가는 표면이라고 우길 테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이 아니라 심층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심층을 머금은 표면이다. 저 내면 깊은 곳에 산다는 자아라는 짐승이 자주 출현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내 얼굴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발명되는 내 자아다. 우리는 이 표면-심층으로 뻔뻔함을 견디거나 수치심으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평생을 산다. (121쪽, '얼굴' 전문)

 

모든 시간은 과거다. 다가오는 모든 찰나들은 시간에 대한 부정이다. (...) 시간은 그것의 안쪽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밀려 나간다. 찰나-나는 항상 시간의 외부로만 존재한다. 오로지 존재들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광대놀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찰나의 시간을 버거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버거워하는 것은 단지 탄생과 죽음, 광대놀음뿐이다. 왜냐하면 찰나들이 곧 존재의 소진이기 때문이다.

 

(137쪽, '시간' 중에서)

 

'얼굴', '이마', '눈', '코'... ... '시간'까지 < 얼굴을 읽다 >에 수록된 글을 다 읽고, 당신의 사진을 찾아봤어요. 젊은 시인의 뜨겁고 치열했던 얼굴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넉넉한 미소가 더해집니다. 지금의 당신 얼굴이 좋으시지요?

 

장석주 | 네, 젊었을 때보다 지금의 삶이 더 좋은 것처럼, 젊었을 때의 얼굴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좋습니다. 주름도 많아지고, 눈에 총기도 옅어졌지만, 이게 제 얼굴이니까요.

 

《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에서 노년에 관하여 이런 글을 쓰셨어요. “이 애비도 행복한 노년은 ‘생각과 명상, 은둔과 무집착’에서 일궈질 거라 믿고 그렇게 따르고자 한다.”라고. 노년이 되는 것 역시 무와 침묵에 이르는 과정이네요.

 

장석주 | 더 나이가 들면, 노자가 그랬듯이, 샐린저가 그랬듯이, 은둔하고, 침묵하며 살고 싶어요. 그때쯤 제가 세상에 내놓은 책들의 설익음이나 거?을 되돌아보면, 더는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세상에 내놓지 않겠지요. 대신에 좋은 책과 음악을 벗 삼고, 물과 숲과 산을 이웃 삼아 살고 싶습니다.

 

“청춘이 상류라면 나는 인생의 하류에 와 있다.”(59쪽, '나는 당신의 활이다' 중에서)고 쓰셨는데, '넓고 깊게 흐르는 상류’의 어른은 '얕고 급하게 흐르는 하류의 청춘’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장석주 | 제 꿈은 제 삶이 노경(老境)에 들었을 때, 말로 충고하거나 조언을 하는 대신에 제 삶 자체가 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한 권의 ‘지혜의 책’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에요. 잘 산 ‘노인’들은 그 자체로 삶에 대한 풍부한 경륜을 담은 한 권의 훌륭한 ‘지혜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당신이 청춘을 바쳤던 거리, ‘종로2가’는 다시 변해가고 있습니다. 1985년, 당신이 보았던 ‘발랄하게 놀고 있는 젊음’을 이제는 종로2가에서 찾아볼 수 없어요. 오히려 지금의 종로2가는 가정과 사회에서 내몰린 노인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종로2가를 자주 다니는 저도 노인의 삶이란 대체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없고, ‘혼자’가 된 노인들은 스스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장석주 | 오늘날 ‘노인’이 된다는 것은 최하층의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력을 잃고 존엄도 잃은 채 하나의 ‘잉여’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인류의 비극입니다. 그 때문에 늙는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생명의 존엄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은 태어날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만, 노경의 삶에도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생물학적 필요와 사회적 필요를 스스로의 힘으로 구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목수라는 멋진 직업을 가졌으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은 없었다. 그게 아버지의 불행이다. 파란만장, 평범, 자잘한 고난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장례를 치르고 안성으로 내려왔을 때 수도가 동파되어 냉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야 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기로 온몸이 떨려 이빨이 부딪쳤다. (200쪽, '시시하고 하찮은 자술 연보' 중에서)

 

시골로 내려온 뒤 살뜰한 소규모 영농인으로 변신한 노모는 알궁댕이로 시든 풀밭에서 뒹구는 누런 호박들을 거두고 수수를 털어 볕에 말려 겨울 채비를 벌써 끝내셨다. 부엌에서 노모는 간고등어를 굽고 그 비릿내와 함께 청국장을 한 상에 올린다. (56쪽, '청국장' 중에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안성에 있었던 일에 관해 쓰신 걸 읽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도연명이 "죽음이 뭐 대수로우랴, 산과 언덕에 내 육신을 합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장석주 |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을 요양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요양병원 중환자실의 풍경이 너무 끔찍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마치 지옥도(地獄圖)와 같았습니다.

 

시골에서 함께 생활했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장석주 | 어머니는 그냥 평범하신 노인이셨어요. 소심하신 편이라 잔걱정이 많고, 다 큰 자식의 일에도 습관적으로 간섭하시길 좋아했지요. 다행인 것은 시골에 와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뭘 심고 거두는 일에서 큰 보람을 찾으신 것이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모든 사진을 엄마 사진처럼 보고, 모든 글에 애도를 담았던 롤랑 바르트의 태도에도 공감하시나요?

 

장석주 |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감동적으로 읽었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의 상실과 부재에 대해 자주 울음을 터뜨리는 것에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동양적인 의식이 체화되어 있기 때문인지,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나 최근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비교적 담담했습니다.

 

《도마뱀은...》의 제일 마지막 글에서 책을 버리라고 하셨죠. 책에서 배운 것들에 매이지 않는 자유의 기쁨을 지적하면서요. 언젠가 독서를 끊는 것도 생각해보시나요?

 

장석주 | 아직은 책이 좋습니다. 지금도 매달 책값을 엄청나게 지출하고 있지만 책을 사는데 들이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아요. 몇 년 뒤에 제주도로 내려가 살 생각인데요. 제주도에 ‘여행자도서관’ 같은 걸 하나 만들까 구상하고 있어요. 제주도의 호젓한 곳에 집을 짓고 삽살개나 한 마리 키우면서 종일 책을 읽고 늦은 오후에는 바닷가로 산책 나가는 것을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아마 그렇게 게으른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한 10년쯤은 정말 미친 듯이 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2014년의 첫봄이 시작됐습니다. 올해 농사 계획은 세우셨나요?

 

장석주 | 노모가 마치 영농후계자처럼 열심히 텃밭을 일구시고 소규모 농사를 지으셔서 그동안 갖가지 채소류나 호박, 콩, 옥수수, 깨 따위를 자급자족 할 수 있었는데, 노모가 돌아가신 뒤 막막해졌습니다. 올해 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면 다 남의 손을 빌어야 할  딱한 처지입니다.

 

장석주


시인, 문장 노동자, 독서광. 논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날마다 책을 읽고 산책하는 걸 인생의 큰 보람으로 삼는 사람이다. 1975년 《월간 문학》 신인상 공모에 시,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했다. 시집 《오랫동안》과 《몽해항로》를 포함해 책을 여럿 썼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에서 열다섯 해 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그 뒤 전업 작가로 살며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 명지전문대 등에서 강의했다.

 

2007년에서 2010년까지 국악방송에서 <문화 사랑방>에 이어 <행복한 문학>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소설 : 장석주의 소설창작 특강》(2002년 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풍경의 탄생》(2005년 문예진흥원 우수문학도서), 《붉디붉은 호랑이》(2005년 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들뢰즈, 카프카, 김훈》(2006년 문화부 우수학술도서), 《장소의 탄생》(2007년 예술원 창작기금 수혜 및 문화부 우수교양도서), 《절벽》(2008년 문화예술위 창작기금 수혜 및 우수문학도서), 《이상과 모던뽀이들》(2011년 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마흔의 서재》(2013년 문화부 우수교양도서), 《동물원과 유토피아》(2013년 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등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지금은 안성에서 책을 읽고 쓰며 살고 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0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