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타인 컬렉션 1집》 - 한 천재의 초상

 

 

레너드 번스타인 | 《레너드 번스타인 컬렉션 vol.1》 | DG | 2014

 

 

우리는 재주가 많은 사람을 원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시대를 ‘조금’ 잘못 타고났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음(音)에 대한 타고난 재능과 비상한 감각을 가지고 태어났다. 자라면서는 좋은 선생들을 만나 그 재능을 꽃피웠다. 대학 시절부터 또래를 가볍게 압도하는 실력으로 자신을 널리 알렸다. 유능한 직업 음악가로 데뷔하고 나서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항목인 쇼맨십까지 갖추었다. 20세기 중·후반기를 지배하는 매체인 카메라 앞에서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카라얀과 더불어 대중들이 자신의 어떠한 모습에 열광하는지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비롯한 먼 과거의 혁신적인 음악가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사회에 대한 진보적인 성향과 은밀한 참여의식마저도 공유하고 있었다. 지금의 사회적 위치에 서기 위해선 당시엔 숨겨야만 했던 성적 취향과 가정사까지. 그는 그야말로 천재라면 응당 ‘할 건 다 했던’ 존재다.

 

 

음악가는 저마다의 그릇을 갖고 있다. 인격적 측면에서 말하는 ‘그릇’과는 다르다. 가령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틀리지 않고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하룻밤 동안 서로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세 곡, 네 곡씩 완벽하게 두들겨대는 연주자도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차이는 음악을 대하는 연주자의 기량에서 온다. 기량의 크기는 ‘틀리고’, ‘완벽하고’로 판단하지 않는다. 기량은 전체를 한눈에 꿰뚫어, 음표들 사이에 가려진 무수한 것들을 해석하는 것. 마지막으로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해내는 것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그릇은 넓었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아 협주곡 몇 곡을 내리 연주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겠지만, 남들은 하나를 제대로 공부하기도 힘들어하는 분야에서 그는 연주·지휘·작곡·이론에 일정 수준으로 통달해 있었다. 지휘와 솔리스트를 겸하여 까다롭기로 소문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지휘자로서는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숱한 오케스트라를 자유자재로 주물렀다. 뮤지컬 작곡가로서 어떤 신작들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자주 무대에 올렸다. 그의 작품은 빛나는 고전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음악이론 해설가로서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한꺼번에 아울렀다. (“청소년 음악회”와 “대답 없는 질문- The Unanswered Question”) 레너드 번스타인을 말하려면, 우선 그가 인간이 맞는지조차 의심된다. 그는 세상에 경이로운 유산을 남긴 존재였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재능 있는 사람은 아무도 맞힐 수 없는 과녁을 맞히는 사람이고, 천재란 아무도 볼 수 없는 과녁을 맞히는 사람이다.” 그는 남들이 가보지 못한 영역을 마음껏 뛰어다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 탓에 그는 그저 ‘가벼움’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All about Lenny

 

 

레너드 번스타인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음반이 우리를 찾아왔다. 무려 58장의 CD와 1장의 DVD로 구성된 이번 모음집은 번스타인과 DG가 함께 참여한 거의 모든 음원이 담겨있다. 다만, 기존의 여러 형태("Trio 시리즈"나 "Virtuoso 시리즈" 등)로 이미 발매된 음원인 빈 필하모니커와 만년에 녹음했던 모차르트의 교향곡들은 전부 빠져있다. 이번 모음집에서는 작곡가 번스타인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작품과 그가 직접 지휘/연주한 음원들이 이번 컬렉션의 중추를 이룬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모두 빈 필하모니커와의 협연으로 실려있고, 독일 통일 당시 기념 음악회에서 연주한 역사적인(그러나 섬세함이나 정교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교향곡 9번의 음원이 따로 수록돼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온 더 타운」, 「캔디드」 같은 번스타인의 무대 음악 전곡은 물론, 교향곡 1~3번, 「치체스터 시편」, 「팬시 프리」, 「디벅」같이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품들까지 모두 실려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전쟁 이후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음악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의 행적을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천재의 눈으로 보고 느낀 예술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으며, 어떤 추억을 되새겨줄 수 있을까?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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