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공간》 - 노인의 눈으로 바라본 노인들의 현재

 

오근재 | 《퇴적공간》 | 민음사 | 2014

 

햇살 좋던 어느 여름 날,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고 나자  군인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깎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생이었다. 머리를 밀고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던 그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시간이 내게도 결국 찾아온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을 헤아려주지는 않았다. 군인의 사회에서 나는 그저 127번 훈련병이었고, 어제와 오늘의 그 어마어마한 간극은 오로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었다. 

 

사람의 사회적 역할이랄 지 입지는 때때로 너무나 갑작스레 변화를 맞이하곤 한다. 대학 졸업장을 받는 순간 사회인이 되고, 20살이 되는 순간 성년이 되며,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기도 한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그랬고,  《퇴적공간》의 저자 오근재 씨가 어느새 '노인'이 되어버린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지 않는 이상, 나이든 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8쪽)

 

저자 역시 자신이 노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노인문제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을 갖고 노인들을 관찰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서울의 여러 공간 중에서도 특히 노인들이 가장 많이 쌓여 있는 곳, 그가 ‘퇴적공간’이라 칭한 종로 일대가 노인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 노인들의 현재에 대한 관찰기의 시작점이다. 

 

2011년 8월 29일 오후 1시 40분, 나는 노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탑골공원을 찾았다. 그곳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를 인정받지 못해 질료적이고 잉여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군이 하구의 삼각지처럼 퇴적되어 있는 공간, '디지털 캐피털 시티 서울'의 아브젝트적 집적지인 실버 공간 혹은 잉여 공간이었다. (68쪽)

 

탑골공원, 종묘 시민공원, 허리우드 클래식, 서울 노인복지센터 등의 수많은 ‘퇴적공간’과 신화, 그리고 동?서양의 미술품들을 통해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이채롭다. 그렇게 '노인의 세계'로 잠입한 저자의 뒤를 따라 다니다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노인들이 왜 이곳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그들은 도대체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그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종일을 여과 없이 마주하게 된다.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평균수명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는 자조적인 말처럼, 지금 이곳의 노인들은 《퇴적공간》의 표지에서처럼 쓸쓸한 뒷모습을 한 채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밀려나고 있다. 젊음이란 연료를 태워가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를 건설했던 청년들이 이제는 연료가 바닥나 자신들이 일구어놓은 세상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러한 맥락에서 《퇴적공간》은 ‘노인’을 육체적인 늙음보다 사회적인 늙음으로 정의한다.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노인에 대한 존경심은 없다. 젊은 세대에게 노인은 그저 짊어져야 할 짐이고 말 안 통하는 어른이며, 정책적으로도 하릴없이 챙겨줘야 하는 집단일 뿐이다. '어르신'이라는 호칭 아래 주어지는 혜택들, 노인복지센터, 지하철 무임승차, 무상급식,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 등이 바로 그 챙겨줌의 형태로 나타나는 대한민국 노인 복지 정책의 현재이다.

 

노동의 기회를 상실함과 동시에 정의 실현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실버 세대는 노동권을 가진 주류 사회로부터 구조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노동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지는 시혜는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힌다. (99쪽)

 

저자는 《퇴적공간>을 통해 이러한 노인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단순히 1차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돈을 깎아주는 행위는 노인들의 '무쓸모'만 심화시킬 뿐이며 이를 제대로 수행할 재정도 충분치 않다는 것. 따라서 먹고 자는 이상, 즉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구가 점차 강해지는 다음 세대 노인들에게는 현재와 같은 복지 정책만으로 만족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게 노인 개개인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활성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노인들은 가정을 떠나 더욱 고독한 개별자가 되어 갈 가능성에 더 많이 노출된다. 현재의 노인복지법은 노인들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고독하며 병이 깊고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킬수록 국가로부터 더 많은 보조금을 받아 낼 수 있다는 점을 노인들이나 그 자녀들에게 학습시킨다. (…)

 

어떻게 한정된 국가의 재정으로 우주를 삼킬 만한 개인의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다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은 복지정책이 개별자(노인이든 영유아든)가 아니라 가정이나 공동체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중요한 관점을 시사한다. (122쪽)

 

따라서 저자는 노인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가족의 재결합’을 주장한다. "만일 물질의 최소 단위가 원자가 아니라 분자이며 국가의 최소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것의 해체가 아니라 복원에 재정을 더 많이 투입해야만 한다. 직장 여성을 위한 영유아의 육아 정책이나 노인의 요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설 중심의 재정 투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설 이용을 하지 않고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문제를 싸안으려는 이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239쪽)

 

그래서 참 어렵다.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현실이란 핵가족을 지나 1인가구 시대로의 도래를 알리고 있으니까. 분명 단기적으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퇴적공간》을 통해 노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직은 딱 거기까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만은 아주 명확하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어머니를 버렸던 다츠헤이 역시 25년 후에는 그의 아들에 의해 다시 버려질 것이다. 다츠헤이는 변함없이 버리기만 할 수 있는 상수적 주체가 결코 될 수 없다. 그도 언젠가는 예외없이 버려질 변수에 불과하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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