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풀며》 - 어른들은 몰라요?

 

 

 

리처드 도킨스 | 《무지개를 풀며》 | 바다출판사 | 2008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웹이라는 세계에서 같은 삶을 누리고 있다. 같은 정보를 보는 것에 만족하고,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똑같이 “빵빵 터졌다” 한다. 다들 똑같은 말을 한다. 기사가 떴다 하면, ‘충격!’이고, 누구랑 누구가 사귀었다 하면, 당장 ‘열애’다. 사소한 것도 모조리 ‘대박’이고, ‘경악’이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 누군가 나와서 어떤 말을 했다 하면, 무조건 ‘폭로’고, 뭐 하나 잘 먹는 모습만 보여줬다 하면, ‘먹방’이다. 기사 제목에 ‘OOO, 알고 보니…’, ‘… 왜?’ 라고 쓰여 있다지만, 알아보고자 했던 정보는 대체로 빠져 있다. 손가락을 서너 번 두들기지만, 같은 내용을 읽는다. 새로운 단어를 처음 접한 ‘아이’처럼 한 가지 단어가 유행했다 하면, 모두 같은 말을 쓰는 ‘대중’들. ‘정보의 바다’에서 대중들은 한 방향으로만 서핑하고 있다. 아니면, 애쓰지도 않으면서 ‘알아서 잘’ 흘러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사는 걸까? 리처드 도킨스는 ‘알아서 잘’이라는 인간의 습성에 주의한다.

 

‘하향평준화’는 과학적 감수성에 대한 전혀 다른 종류의 위협이다. ‘과학 대중화’ 운동은 (…) 통속화되어 가고 있다. (…)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재미, 재미, 재미가 있다고 외친다. ‘괴짜’ 과학자들이 폭발과 조잡한 트릭 따위를 연출한다. (…) 꼭 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엘리트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배타적인 건방짐과 사람들로 하여금 실력을 향상시켜 엘리트가 되도록 독려하는 친절한 엘리트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계산된 하향평준화가 최악이다. 그것은 배려하는 척하며 멸시하는 것이다. (…) 더 양보하기 어려운 것은 텔레비전을 통해 잘 알려진 심사위원장의 행동이었다. 쇼프로그램의 전형적인 경박함으로 조잘대던 그녀는 그 끔찍하고 징그러운 벌레들을 쳐다보며 청중(성인들)들에게 얼마나 소름끼치는지를 반복적으로 합창하도록 부추겼다. “우웨에엑! 으으악! 에에에이!” 이런 종류의 천박한 재미는 과학의 신비함을 손상시키며, 과학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고취시킬 만한 가장 적합한 사람들─진정한 시인과 진정한 인문학자─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만든다. (50~54쪽)

 

뉴턴이 무지개를 프리즘의 색으로 환원시킨 후 모든 시정(詩情)은 말살됐다고 생각한 시인(존 키츠)을 떠올리며, 도킨스는 “능한 시인이 스스로를 먼저 현혹시켰을 때 타인을 현혹시키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309쪽) 보여준다. 나아가 “삼류 칼럼 기고가”(48쪽)가 알려준 것을 받아들이며, 그대로 안다고 여기는 것은 위험하고, 왜 알아야 하는지, 게다가 인간이라면, 그건 또 왜 아름다운지 알아야 한다고 명석하게 설명한다. 무지개의 수수께끼가 풀렸지만, 수수께끼는 다른 수수께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수수께끼가 풀리는 과정엔 낭만과 감동이 더욱 많이 생겨날 수 있다고. 그는 부지런히 무지개를 풀었다. 무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이처럼 말하고 유년기 또래집단에서 못 벗어난 어른’이 너무 많은 이 시대에, 언변에 기대는 괴짜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에 나는 부지런히 무지개를 풀고 있는 어른을 찾고 싶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노래 부르며 자란 나도 어른이 돼 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른은 되기 싫다.   

 

우리의 언어는 계몽하고 설명하도록 사용되어야 하며, 한 가지 방식으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명석함을 잃지 않으면서, 아니 더 명석해짐으로써 블레이크와 같은 신비주의자를 감동시킨 경이로움에서 진정한 과학을 되찾아야 한다. (45쪽)

 

어떻게 시작되었고 언어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든 동물 중에서도 독특한 우리 인간은 시적 비유의 축복(비슷함을 발견하고 그 관계를 생각과 감정의 바탕으로 삼는 것)을 받았다. 이것은 상상력의 선물이다. (…) 우리는 머릿속에 있는 가상현실 소프트웨어를 실용적인 소프트웨어만을 시뮬레이션하는 독재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 곧 불은 꺼지겠지만 그러기 전에 우리에겐 우리가 잠시 머무르는 이 곳과 머무르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454쪽)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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