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견딜 수 없어》 - 찾아야 맞을 수 있는 봄

 

 

아지즈 네신 |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 살림FRIENDS | 2009

 

   한때 우리나라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웃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불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검은 연기가 우리나라를 에워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
   수소문을 하여 이 검은 연기의 원류를 알아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나라의 통치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존경하는 통치자가 숨을 쉬고 입을 열 때마다 검은 연기가 폭폭 나왔던 것입니다. 이 검은 연기가 우리나라를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어느 누구도 그것을 통치자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이 검은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3~24쪽, <평온의 나라>)

 

익숙한 현실의 장면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시점은 과거의 어느 때여도 되고 지금이어도 상관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들로 저마다 불행한 실정이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생활의 끝을 부여잡고 간신히 그리고 간간히 ‘안녕하지 못한’ 하루들을 버텨내고 있으니까.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실업률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으며 집값은 터무니없이 오르고만 있으니 안정된 생활을 꿈꾸는 소시민의 바람 따위, 절망을 예약해둔 빛 좋은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터키의 국민작가 아지즈 네신의 소설집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은 그렇게 개선의 여지없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현실,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우리의 현재 모습을 상기시킨다. 60년대 터키를 뒤덮은 역사의 어둠과 그 아래서 숨 죽여 연명하던 사람들의 비겁함을 신랄하게 풍자하며 “우리가 겪어 왔던 역사의 매서운 겨울”은 물론 이대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위해 좀처럼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오늘날의 안일함을 비판하고 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위로하다 결국에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 한 저 늙은 당나귀처럼, 참기 어려운 이 겨울의 냉혹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조금만 버티면 언젠가 봄이 올 거라고, 찾아야 맞을 수 있는 봄날을 지연시키고 있는 지금의 나, 그리고 당신을 똑바로 지목하면서.  

 

   늑대가 온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 늙은 당나귀는 이 소리를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풀을 뜯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당나귀는 여전히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늑대가 아닐 거야, 늑대 소리일 리가 없어!” (…)
   굶주린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로 당나귀의 엉덩이를 물어 커다란 살점을 떼어 냈습니다. 죽을 듯한 고통으로 땅에 쓰러진 당나귀의 혀가 갑자기 굳어 버렸습니다. (…) 그러자 이제야 당나귀는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히, 늑대였구나. 히, 늑대였어! 히, 늑대였어!” (…)
   “히~힝. 히~힝!”
   바로 그날 이후, 우리 당나귀 족속들은 말하는 것을 잊었다고 합니다. 그 늙은 당나귀가 위험이 꼬리 밑에 올 때까지 자신을 위로하고 속이지 않았더라면 우리들도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았을 겁니다. (65~71쪽, <아, 우리 당나귀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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