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2번》 - 러시아의 또 다른 이름

 

 



데니스 마추예프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2번》 | 마린스키 | 2014


우리의 음악은 우리의 손으로

 

최근 개최되고 있는 동계올림픽의 영향인지 주변에서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공산정권이 무너진 지 한참이 됐지만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개방된 국제 규모의 행사를 치르는 것 자체가 정말 오랜만의 일이기도 하고, 그 나라의 문화 전체가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러시아는 문화·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서유럽의 여타 국가에 비해서 한 발 뒤늦게 따라가는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철학,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영역에서는 다른 국가들이 쉽게 넘보기 힘든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작품들을 대거 남겼다. 이 유산들은 현대의 기술력과 결합하여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고급문화 상품의 하나로 떠올랐고, 철의 장막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가가치를 가져다주는 효자 상품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독립적이면서도 풍성한 ‘러시아 음악’ 이라는 훌륭한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비해 체계화 된 계보나 음악교육의 시작이 다소 늦은 편이었지만 인구수에 기반을 둔 음악 애호가의 폭발적인 증가와 프랑스 중심의 서구문화에 대한 적극적 수용에 힘입어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음악학교의 훌륭한 교사들은 끊임없이 뛰어난 학생들을 길러내기 시작했고, 겁 없는 신동들은 유명한 콩쿠르에서 주목을 받고 음반시장과 세계의 무대를 평정하고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들은 과거의 전통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보다 상업적인 측면을 강화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자체 음반 레이블’의 수립이다. 이는 음반업계의 불황과 맞물려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각 악단의 성격과 지향하는 음악적 목표를 명확히 드러내줄 수 있는 나름대로의 강점을 가진 음반 발매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명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자체 레이블인 ‘마린스키(Mariinsky)'가 자국 레퍼토리 중심의 활발한 음반·영상물 발매의 선봉에 서있다. 국적에 따른 음악가의 특징이 옅어지고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음악‘은 전 세계인을 기대하게 만드는, 분명히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또한 그것을 상업적으로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음반 발매는 SACD의 화려한 음질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의 곡을 들려주고 있으며 전 세계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얼어붙은 대륙에서 태어난 소리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위력은 그간 여러 장의 녹음을 통해 그 진가가 입증된 바 있다. 특히 블루레이로 발매된 차이콥스키 교향곡 4·5·6번의 DVD는 2010년대에 들어 출시된 가장 중요한 영상물 중 하나인데, LP시절부터 내려져 온 러시아인들의 손으로 완성된 차이콥스키 교향곡 음반 계보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발매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서유럽 악단과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로 이미 좋은 음반이 많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러시아 음악계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얼굴인 게르기예프와 마추예프 콤비가 만들어 낸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과 2번이라는 카드는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아이템일 것이다.

 

연주의 질에서도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도입부의 호른 합주는 머뭇거리지 않으며 오케스트라의 총주는 탄탄한 밸런스의 근육질을 유지하고 있다. 마추예프의 피아노 역시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는 볼륨을 들려주고 있는데 음색도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와 소리 궁합이 상당히 잘 맞는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카라얀과 리히테르의 DG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묘한 부조화(좋은 연주이기는 하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결국에는 서로가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나 호로비츠와 토스카니니가 말싸움하듯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치는 음악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아마 가장 비슷한 콘셉트의 녹음을 찾는다면 길렐스-마젤 콤비가 남긴 강력하고 건강한 활기가 넘쳐나는 음반이 좋을 것 같다.

 

1번 협주곡에 비하면 실제로 듣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2번 협주곡 역시 멋진 연주이다. 참 희한한 일이지만 제아무리 훌륭한 음악가라고 하더라도 대중적으로 잘 연주되지 않는 음악을 녹음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물론 대중적으로 잘 연주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악곡 자체에 이런저런 결함이 많아서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게르기예프와 마추예프에게는 그러한 것들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듯 보이며 시원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도 1번 협주곡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1악장이 시작되는 4번 트랙을 켜면 ‘이게 원래 이런 곡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되고, 음반 표지에서는 어쩐지 겸손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은 마추예프의 얼굴이 어느새 ‘러시아 음악에 대해 한 수 가르쳐주지’ 하며 자부심에 가득 찬 미소를 짓는 표정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번 음반처럼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이 한가득 느껴지는 차이콥스키를 듣다보면 차이콥스키의 음악이야말로 '러시아'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음악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민요선율로 대표되는 민속적 정취와 서구음악의 세련미를 조화시켜 세계인들에게 보다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어찌 보면 지금의 러시아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다-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모두가 '차이콥스키'는 곧 '러시아'의 또 다른 이름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 24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