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권력의 역사》- 달력에 박힌 권력의 자취

 

 

외르크 뤼프케 | 《시간과 권력의 역사》 | 알마 | 2011

 

“특정한 달력은 권력의 존재를 보여준다. 적법한 지배자든 부당한 지배자든 그들은 자신의 날로 달력을 가득 채운다. 독재자의 동상과 초상화로 공간이 뒤덮이듯 시간도 달력의 모습으로 그렇게 뒤덮인다.”

 

이.럴.수.가! 시간마저 내 것이 아니었다니. 시간까지도 지배하려는 권력의 음침한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이 책은 달력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부터 시작된 유럽지역 달력의 문화와 역사에 숨겨진 이면을 들여다본다. 사실 고대유럽의 낯선 어원과 용어, 역사가 익숙지 않은지라 책의 초반을 읽어나가는 게 그리 녹록지 않았다. 

 

고대의 달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연대기로 기록되어 역사적이고 종교적 성격을 띠었고, 황제의 축제일을 모자이크와 그림으로 새기거나, 읽을거리로서의 달력텍스트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고정달력인 파라페그마, 한해의 모든 날이 적힌 파스티, 천문학과 일기예보에 관한 농민력, 다양한 독자층을 지닌 달력이야기라는 문학 장르도 있었다. 성경 이외에 책이 많지 않던 시절 매년 구입하는 달력은 인기 있는 ‘책’이었다. 시간과 작업을 계획하는 도구, 메모와 참고서적, 오락물로서 끊임없이 낭독되었다. 정보를 주고 행동양식을 결정하고 오락의 기능을 하는 달력의 역할은 중세까지 계속되었다. 계몽주의시대에는 국민계몽과 국민교육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달력의 역사가 권력의 역사다. 매년 반복적으로 거행되는 축제나 왕가행사는 지배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정치에 큰 효과가 있었다. 지배자들은 달력구성을 독점해서 상류층의 결속을 다지고 축제를 정치적으로 기획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정치도구’로 달력을 이용했다. 달력의 역사에는 지배 권력의 자취들이 깨알같이 박혀있다.

 

한편 지은이는 달력 사용을 가장 강하게 특징짓는 일주일리듬 이야기와, 평범했던 일요일이 의미 있는 날로 선택된 이유도 풀어놓았다. 현재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 점진적으로 수용되기까지의 과정과 실패로 돌아간 개혁의 역사도 흥미롭다. 일본의 경우 1872년에 유럽의 산업국가와 미국과의 교류를 위해 급작스럽게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전의 12월 3일에서 그레고릭력 1월1일로 바꾸면서 급료를 지급하지 않고 국가의 재정부담을 덜려는 경제적의도가 숨어있었다. 또한 황제의 신화적 즉위의 출발점으로도 이용한데서 사회적 행위와 정치적, 경제적인 달력의 다층성을 엿볼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현재의 달력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나, 달력 속에서 움직이는 시간의 역사는 모든 것의 속도를 높이는 역사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또한 화요일 오전의 자유시간, 일요일이나 야간의 근무 등 기존관념과 방식에 얽매여 시간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서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제각각 이용할 수 있는 ‘달력의 회색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방적이고 선도적인 일부 기업에선 이미 실행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시간과 달력에 쫓기듯 살면서도 정작 다양한 용도로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영향을 끼쳐온 ‘달력의 역사’에 무지했다. 성당에서 받은 달력을 보고 있자니, 성인들의 축일이 만들어졌던 그 옛날의 법석이는 장면들이 눈앞에 어렴풋이 펼쳐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란해골13호' 님은?
이런저런 만남이 가득한 책이 좋습니다. 시야를 딱 틔워주기도 하고, 다시 치열하게 살고 싶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도 하고,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도 하네요. 무엇보다 제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은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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