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베토벤: 교향곡 전집 [Blu-ray]] - Addio, Maestro Abbado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베토벤: 교향곡 전집 [Blu-ray]》 | 유로아츠 | 2013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부음이 들려온 것은 2014년 1월 20일. 유럽 현지시간으로는 오전 10시경이었다. SNS상에서는 해외 유력 언론들의 공식기사가 나오기 1시간쯤 전부터 아바도에 관한 소식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약 1년 전에 있었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타계에 대한 루머사건도 있었던 터인지 모두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했고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2000년경 위암 수술을 받은 이후 더욱 쇠약해진 육체로 세월의 흐름에 힘겹게 맞서 싸워왔던 그였기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며 비교적 일찍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와 평생 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도이체 그라모폰(DG),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이 연이어 부고를 내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권위적이고 무거운 음악들이 대세를 이루었던 속칭 '거장시대'를 정면으로 통과했고 20세기 후반부터는 그 전통을 깨고 나아가 자신이 원했던, 보다 발전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의 오케스트라와 새로운 음향을 현실화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위대한 음악가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한 개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시기와 질투, 자존심, 허세, 권력투쟁, 뒷얘기가 넘쳐나는 좁아터진 음악계-그것도 상위 1퍼센트의 세계-에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오면서도 끝까지 주변인에 대한 겸손과 배려, 삶에 대한 끈기어린 투쟁 그리고 음악에의 헌신을 동시에 실천한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1933년부터 하나씩 훑어보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나 직업적 경력에 대한 정보들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나오는데다 그것을 모두 열거한다 하더라도 음악가로서의 아바도를 온전히 드러내는 데는 반쪽짜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아바도가 남긴 중요한 음반과 영상물들을 시대별로 되짚어보며 철저히 음악가로서의 아바도를 재조명해보도록 하자.  

 

아바도의 음악인생에 있어서 젊은 날의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밑바탕을 제공했던 곳으로는 일단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LSO)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66년도에 처음 LSO를 지휘한 뒤, 그 다음 해에 남긴 멘델스존의 교향곡 음반(DECCA)은 거장의 젊은 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아바도의 안정적인 리드와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좋은 연주이다. 80년대에 같은 오케스트라와 다시 녹음한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DG)과 비교해보면 다소 서투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만만하게 볼 수준의 연주가 아님은 확실하다.

 

 

                 

60년대 후반에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직을 맡으며 예술적으로 한층 단단해진 아바도는 70년대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 특히 협주곡의 반주 지휘자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였는데,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한 쇼팽·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프리드리히 굴다와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들이 담긴 음반은 협주곡이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구조적인 아름다움과 독주자의 화려함을 커버하는 운용감각이 절정에 달한 멋진 연주이다. 아바도는 80년대에 수석객원지휘자로 인연을 맺게 되는 시카고 심포니와도 좋은 음반을 남겼다. 가장 주목할 만한 음반은 1976년에 남긴 말러 교향곡 2번인데, 이 음반은 나중에 서술할 루체른 축제 실황이 나오기 전까지 아바도의 동곡 녹음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녹음이기도 하다. 1985년에 LSO와 녹음한 라벨의 관현악곡집은 볼레로를 비롯한 라벨 특유의 신선한 관현악법을 깔끔하고 단정된 소리로 담아낸 수작이며 1986년부터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슈베르트 교향곡은 우아한 서정성과 기품, 매끈매끈한 현악기의 질감이 일품이어서,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리패키지되어 꾸준히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이다.

 

1980년대 후반의 아바도는 베를린 필(이하 BPO)과의 사이가 나빠진 카라얀의 빈자리를 대신하곤 했던 (비교적)젊은 지휘자 그룹의 한 명이었다. 특히 1989년 BPO의 예술감독으로 선출되기 이전에 남긴 브람스의 교향곡 전집은 카라얀 최후 시기의 그림자가 어정쩡하게 남아있던 BPO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담백한 소리를 접목시키려 했던 아바도의 고민이 담겨있는 독특한 느낌의 음반이다. 1989년 녹음한 말러 교향곡 1번은 BPO에 갓 데뷔한 아바도가 전임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온갖 우려를 과감히 걷어내고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한 음악적 포고문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녹음이다. 'BPO의 예술감독' 이라는 존재는 음악계에서 황제와도 같은 자리였고 카라얀의 뒤를 이어 그 자리를 물려받은 아바도에게는 기대와 우려, 온갖 종류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말러 1번의 녹음을 시작으로 아바도는 BPO에 보다 현대적인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쇤베르크를 위시한 신 빈악파의 작품을 녹음하는 한편 슈톡하우젠, 루이지 노노, 볼프강 림, 죄르지 쿠르탁과 같은 20세기 작곡가들의 혁신적인 창작음악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시도가 푸르트뱅글러와 카라얀으로 이어지는 향수에 젖어있던 보수적인 음악팬들과 평론가들의 심기를 건드려 베를린에서의 첫 5년간을 온갖 비난과 칭찬이 어지럽게 오가는 상황에서 보내야했다.

 

   

 

생사를 건 위암 수술 이후, 아바도는 자신이 원하는 투명하고 담백한 소리를 BPO에 이식시키기 위해 지속적이고 착실하게 녹음과 연주를 병행해나갔으며 그 결과물은 1999년부터 녹음하기 시작한 새로운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성공적으로 반영되어있다. 아바도와 BPO는 베를린과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홀을 오가며 CD와 DVD를 남겼으며, 지휘자의 실력과 연구의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와도 같은 베토벤 교향곡을 그 어떤 어려움도 없이 자유자재로 주무르고 있다. 이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과거 세대의 지휘자들에 맞서 '우리시대'의 음악가들이 내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놀라운 음악적 유산임을 확신할 수 있으며, 아바도가 원했던 소리가 그의 임기 말년에 본격적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BPO의 예술감독직을 사이먼 래틀에게 넘긴 아바도는 자신이 원하는 '거대한 실내악'을 구현하기 위해 스위스로 가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하 루체른)를 조직했다. S급 오케스트라의 수석, 악장 급의 연주자들을 모아서 만든 이 악단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예술혼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되기는 했으나 고령으로 인한 지속적인 건강 악화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직감해서였을까, 아바도가 루체른과 남긴 브루크너와 말러의 영상물은 하나하나가 음악연주 역사에 길이 남을 수작으로 꼽힌다. DVD시대의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또렷히 전달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인 것이다. 특히 병마를 딛고 다시 일어서 연주활동을 재개한 마에스트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은 앞선 세대의 명반들을 모조리 무색하게 할 만큼의 놀라운 연주로 듣는 이를 압도한다. 특히 인생의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모습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거대한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아바도의 모습은 음악보다 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아바도가 가장 최근에 이뤄낸 또 하나의 업적은 '오케스트라 모차르트'를 조직해서 정교하고 투명한 앙상블이 기반이 된 최고의 모차르트 음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숱한 음악들을 연주해 온 거장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모차르트였고, 그 마지막 불꽃을 태운 볼로냐는 결국 아바도 최후의 장소가 되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과 합주의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온화한 인품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그가 들려주었던 음악들이 정말 많이 기억날 것 같다.

 

또 하나의 거장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마음이 휑하다. 부디 고통이 없는 곳에서 자신이 존경했던 작곡가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기도해본다. 넉넉하고 소박해서 정이 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미소처럼 아름다운 소리들과 함께. Addio, Maestro Abbado.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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