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정신》- 몽테뉴에게서 자신을 찾다

 

슈테판 츠바이크 | 《위로하는 정신》| 유유 | 2012

 

자신이 없다. 숫자의 명령에 사로잡힌 현실과 남의 기준에 꿰맞춰진 일상. 이대로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은 인생과 그대로 언젠가는 끝나버릴 것만 같은 이 생(生)에 자신이 없다. 어떤 변곡점 하나 없이 마치 정해진 길인 듯, 마냥 흘러가고만 있는 내 삶에 내가 정말 있는가, 자신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제까지의 모든 날에는 내가 분명 있고, 그 날에 선택들은 내가 한 것이 틀림없는데, 그 결과로 주어진 오늘이 이리도 낯설은 이유는 무엇인가. 어딘가에 흘리고 모른 채 지나온 것처럼, 잊고 있던 걸 비로소 기억해낸 것처럼, 내가 잃어버린 게 나라고 이제는 그것을 찾아나서야겠단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러지 않고 더는 갈 수 없다는 계속된 이 속삼임이 삶에서 점차 빠져 나가고 있는 내가 나에게 남기는 말인가, 하여서다.

 

“너의 체험 중에서 가장 고약한 것들, 패배로 보이는 것들, 운명의 타격은 네가 그런 것들 앞에서 약해질 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일들에 가치와 무게를 두고, 그런 일에 즐거움이나 고통을 분배하는 사람이 네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냐? 너 자신 말고는 그 무엇도 너의 자아를 귀하거나 비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39쪽)

 

지난 시대, 인간의 비이성과 광기에 지배당한 역사가 있었다. 그 안에, 목숨과 개인의 자유를 위협받으며 “뒤흔들리는 영혼”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 있었다. 한때 절정에 달한 인문주의 문화를 완전히 망각한 양, 전쟁과 학살로 골몰하며 인간을 몰살하고 인간성을 말살한 “집단 광증의 시대”에 “이 거대한 파멸의 한가운데서 정신적·도덕적 독립을 흠 없이 지키는 일”에 긴급히 내몰린, “그런 시대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그보다 먼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 자신의 ‘본질’을 혼탁하고 독성이 짙은 시대의 거품에 뒤섞이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정직하고 격렬하게 싸운 사람”, “내적인 자아를 자기 시대에서 구하여 모든 시대를 위해 보존하는 데 성공한 사람” ‘미셸 드 몽테뉴’가 있었다.

 

“몽테뉴의 책을 펼치면 펼치는 곳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내 영혼에 가장 내밀한 근심을 만들어내는 일들에 대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그가 더욱 명료하고 뛰어나게 생각하고 말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자아가 반영된 ‘너’가 있다. 여기서는 시대를 나누는 그 먼 거리가 사진다. 책 한 권, 곧 문학이나 철학 책 한 권이 아니라, 나의 형제와 내게 충고를 해주고 나를 위안하고 나와 친밀한 인간, 내가 그를 이해하고 또 그가 나를 이해하는 한 인간이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37쪽)

 

《위로하는 정신》은 인간적인 무엇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광란의 시대를 맞닥뜨린 슈테판 츠바이크, 그 자신을 위한 책이다. “곧 세계가 인문주의를 통해 밝아질 것이라는” “거대한 희망”을 일거에 밀어내고 그 자리를 폭력적으로 점거한 당혹감과 분노, 좌절 그리고 절망에 헤매는 정신, 그러나 끝내 맞서 싸우는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은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맞서 자신을”, “자기 내면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그가  “운명의 동질성”으로 뒤늦게 알아본 미셸 드 몽테뉴의 삶이, 그 삶의 기술과 지혜가, 그것을 되새기고 곱씹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려한 문장과 깊이 있는 사색이 이토록 다행스레 오늘, “자기 자신을 향하는 길”을 찾아나선 혼란하고 불확실한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주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이성적으로 남아 있기, 비인간성의 시대에 인간적인 사람 되기, 미친 듯이 패거리 짓는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남아 있기” (36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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