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디자인》 - 날개가 된 디자인

 

 

 

유인경 박선주 | 《위로의 디자인》 | 지콜론북 | 2013

 

 일반적으로 '디자인이 좋다'고 말할 때면 그것은 어떤 물건이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찬성하거나 혹은 '내 취향은 아니야'라며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디자인이 좋다는 건 말이지...'하면서 딴지를 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다음과 같다. '디자인이 좋다', 혹은 '좋은 디자인이다'라는 뜻은 기능성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제작에도 용이해야 하며, 가장 최소한의 재료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리고 덧붙이길, 본래 디자인이라는 것은 ‘계획하다, 고안하다’라는 뜻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우선으로 하려는 의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좋은 디자인은 딴지를 건 사람이 말한 것을 모두 갖추었을 때 성립되며 희한하게도 그럴 때에 아름다움이 자연적으로 따라온다.

 

이제 세상은 좋은 디자인의 시대를 너머 예술 같은 디자인의 시대로 폭주하는 것 같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제품은 질겁할 만큼 비싼 가격에 붙여지고, 오래 전 수공예작품들이 가졌을 법한 희소성을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복귀시킨다. 필요한 상품에 못지 않게 유희적이고 잉여적인 상품들이 탄생하고(예를 들면 극장에서 자리를 맡아놓는데 쓴다는 쏟아진 커피+커피잔 모형),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탓에 네모난 기계 하나가 작아졌다 커졌다 넓적해졌다 길어졌다 바람 잘 날이 없다. 솔직히 말해 눈에 띄어야 버텨나가는 기업들의 경쟁 속에서 충견 노릇을 톡톡히 하는 디자인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기능성에 충실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 그리워지는 것도 아니다. 이쯤에서 어디로든 디자인을 위한 탈출구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위로의 디자인》은 디자인을 통해 오랜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기능성과 예술성과 의미가 모두 충족되는 수작들을 접할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의도는 사용자와 소통이 가능하고 일상에 온기를 제공하는 디자인들을 소개하려는 것인데 한편으론 이것이 바로 디자인을 위한 탈출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속에 소개된 모든 제품들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려는 의도가 때론 황홀하게, 때론 위트 있게, 때론 가슴 뭉클하게 배어있다.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아름다움의 추구가 아니라 진심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산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황량한 곳에는 인간적인 터치를, 자연 앞에서는 겸손함을 발휘할 줄 아는 아름다움이며, 고독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감싸는 살가운 마음씨와 할 말은 다 하는 당당함, 그리고 생과 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사려 깊음, 언제나 마주해도 질리지 않는 위트 등을 하나씩은 장점으로 가진 아름다움이다.

 

이 책에서는 생활 곳곳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사물들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디자인'이라 지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자연과 같이 그 자체로 완벽한 '디자인'을 포함해) 그것들은 그저 운 좋게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이, 사용자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사고와 노력 끝에 세상에 내 놓은 '계획된 창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7쪽)

 

다양한 디자인 작품들을 형식상으로 크게 나눈다면 설치/환경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의미상으로 나눈다면 온기를 부여하는 디자인과 유머와 위트가 돋보이는 디자인, 그리고 삶을 성찰하는 디자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설치/환경 디자인에 어떤 작품들이 있나 살펴보면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맨 첫머리에 실린 '나부끼는 빛'이다. 이것은 거리의 조명으로써 기능을 다하고 동시에 설치예술로써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환호를 자아낸다. 같은 설치 작품이지만 반대로 그늘을 제공하는 바람개비 지붕(?)도 눈여겨볼만하다. 이것은 기특하게도 폐지가 된 신문을 재활용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송전탑은 진정 디자인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하고 자연과 문명, 그리고 인간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을 디자인에 반영한 작품들이다. 모름지기 즐거움을 위해 택하는 것이 디자인이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디자인도 우리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된다. 담벼락에 낙서하던 추억을 상기시키는 커다란 블랙보드는 사소한 낙서 대신 '내가 죽기 전에'라는 문장을 완성하도록 유도하면서 삶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한다. 단순히 담벼락에 설치한 간단한 장치인데도 우리가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게 함으로써 블랙보드 이상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옆에 있는 작은 화분은 묘지가 될 곳에 심는 나무이다(수목장과 같은). 나무가 자라면 하얀 링이 깨지면서 땅속으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대단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리 없이 묵묵히 사라지는 것이다.

 

 

위트와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그 안에 반영된 의도의 기발함에서 발현되는 멋진 위트와 유머이다. 'Dr. Hard drive Bag' 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품은 안티바이러스 기능을 가진 하드드라이브이다. 형태와 거치대를 마치 수혈대처럼 만들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신선한 피(데이터)를 공급한다는 의미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양처럼 깜찍한 의자도 relation'sheep'이라는 비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를 형성하는데 여러가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의자는 양털 같은 포근함을 더하며 (relation)ship에서 sheep이라는 단어교체로 위트도 더한다. 마지막으로 한 여자가 펼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불이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 외롭고 심심하지 말라고 이불 위에 읽을 거리를 적어놓은 것이다. 글자도 큼직하고 페이지도 널찍한데다 겹겹으로 된 이불이니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눈독을 들일 법도 하다.

 

 

책 속의 작품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보았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못지않게 훌륭하다. 아니, 더 훌륭하지만 미래의 독자를 위해 비밀로 남기고 싶은 작품들, 혹은 한 컷으로 소개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상당히 있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수작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기발한 작품 몇 점을 좀 더 구경한다고 무슨 위로가 되며 뭐가 달라질까 생각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글솜씨 좋은 저자의 설명을 곁들여 천천히 작품을 감상한다면 특별한 감동을 얻을 수 있고, 디자인이 가진 외형이 아니라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저자가 쓴 한 구절의 문장에서 디자인의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그대로 적어본다.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Gomi Taro)의 <똑똑하게 사는 법>(한림출판사,2009)이라는 책이 있다. 제대로 세상을 사는 방법들이 실려있는데, 개중에는 '연을 제대로 날리는 법'도 있다. 거기에 "물론 스스로 날 수 있는 사람은 연을 날릴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연은 날고 싶은 인간의 염원을 대신 이루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연은 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인간의 자기 인식 그 자체가 아닐지.
  예술의 역할도 어쩌면 연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은유적 의미에서 인간을 날게 해주는 것.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며 정신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 예술과 디자인의 탁월한 작품들은 우리를 무지와 아집, 교만으로부터 해방시킨다.(16-17쪽)

 

이제 디자인은 기능에 충실한 최적의 제품을 너머, 외형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제품을 너머, 우리들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정신적인 사물로 재탄생 해야 할 것 같다. 디자인이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와 닿는다면 우리들을 무지와 아집, 교만에서뿐만 아니라 탐욕에서도 해방시킬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향치'님은?
올해로 독서세상에서 다섯 살이 된 아이. 예술, 인문, 문학 도서를 주식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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