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 이 삶에 종착역이 있다면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 들녘 | 2007

 

다 살았다, 라고 실감하는 삶이 있을까. 긴 여행을 끝맺고 사자(死者)의 역에 후회 없이 내려서는 삶. 글쎄, 나는 대개의 사자들이 플랫폼을 거니는 상상을 해 본다. 이따금 가로막힌 철로를 돌아보며 더 갈 수는 없을는지 부질없이 발을 구르는 사자들. 당연하게도 그들은 더 갈 수 없다.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32쪽, 《리스본행 야간열차 1》)한 채로. 죽음은 이 경험의 주인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다. 허나 경험의 궤적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산 자들에 의해 그것은 기억되고 이야기된다. 죽어도 계속되는 삶이 있다면 아마 그 같은 방식을 통해 가능하리라.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여기 죽은 자의 삶에 매료된 산 자가 있다. 산 자, ‘그레고리우스’의 지난 삼십 년 간 일상은 한결 같았다.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고전문헌학으로 세계 전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 같았”(15쪽)을 만큼 그 외의 다른 길에 눈을 돌린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날, 헌책방에서 얻은 포르투갈어로 씌어진 책 한 권이 ‘그레고리우스’의 행로를 틀어 놓는다. 책을 쓴 사람, ‘프라두’의 궤적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존경받는 의사였으며, 비밀경찰의 목숨을 구한 뒤로 사람들에게 비난 받은 자신의 일을 속죄하고자 남몰래 저항운동에 뛰어든 ‘프라두’와 그를 기억하는 산 자들을 찾아서.

 

“오빠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파치마가 죽고 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였어요. ‘내부의 마비를 막기 위한 싸움이다.’ 오빠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몇 주 후에는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글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깨어 있다고 할 수 없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는 더욱 알지 못하고.’ 이런 말도 했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글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저에게도. 오빠는……, 오빠는 정말 의심이 많았어요.” (171쪽, 《리스본행 야간열차 1》)

 

‘프라두’는 고뇌가 깊은 사람이었다. 이는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357쪽, 《리스본행 야간열차 1》)는 식의 자기고백적인 글쓰기로 이어졌다. 부조리한 시대 가운데 살아 있는 자신, 무력한 육체와 죽음에 대한 예감에 떠는 자신, 실패한 감정 속에 고립되어 버린 자신과의 투쟁.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그 태도는 잊히지 않았다. 산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프라두’는 살아 있다. 플랫폼이 아니라 저마다의 삶 속에. 이는 ‘그레고리우스’가 닿아야 할 종착역이기도 할 것이다. 옛 문자에만 비추어 봤던, 이제는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자신의 삶으로. ‘프라두’를 통해 경험했듯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334쪽, 《리스본행 야간열차 2》)으로서의 삶으로.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237쪽, 《리스본행 야간열차 2》)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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