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시니·혀노 | 《죽음에 관하여》 | 영컴 | 2013

 

"네 얘기나 한 번 듣지."

 

강풀이 그려낸 '저승사자'가 있었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가 있었다. 이제 《죽음에 관하여》다. 죽음을 생각해보게 하는 만화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뇌로 귀결된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 생명이다. 그것을 '살아가는 것'으로 바꾸는 것 또한 생명을 가진 이의 소명이다. 음악이 잔잔히 귀를 자극한다. '웹툰'의 형식을 취했기에 할 수 있는 실험이다. 마치, 장송곡 같다. 죽음 곁에 머무는 음악이다.

 

놀라운 것은 신의 존재다. 여기서만큼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묵묵히 들어준다. 그리고 묻는다. 아직 못한 것이 남았는지를. 홀가분하게 이승을 떠날 수 있게 한다. 신선하다. 《신과 함께》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낸다. 염라는 저승을 디자인했고, 가택신은 인간과 함께 산다. 강풀 만화 《어게인》에서는 세 부류의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망자를 눈으로 지켜보고, 망자의 손을 잡아 주며, 사자의 목소리로 망자를 위로한다. 죽은 자를 대하는 인간과 비슷하다. 《죽음에 관하여》는 새로운 시선이다. 신이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있을 법하다. 

 

등장하는 죽음들, 그 중 기억에 남는 죽음들이 몇 있다. 부모의 실수로, 아니 부모의 선택으로 이제 죽어야 하는 아기가 있었다. 친구들을 먼저 다 떠나보내고서야 저승에 온 할아버지도 있었다. 아내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떠나올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것이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던 소방관도 있었다. 아무 관계도 없었던 사람의 잘못으로 죽게 된 버스 기사도 있었다. 과로사한 아버지의 모습도 잊지 못한다. 신은 여유를 즐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서로 통한다. 죽은 영혼과 다시 마주한다. 또 왔군, 신이 말한다. 살아 있는 자들의 수만큼, 신은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죽음도 슬프지 않은 건 없다. 영혼은 신과 대면한다. 억울함을 토로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담담히 말하기도 한다. 신은 그저 들어준다. 한 마디씩, 툭툭 거들 뿐이다. 세심한 존재 같지는 않다. 가끔은, 신도 인간을 통해 배운다. 감명한다. 이 만화, 죽음을 지켜볼 뿐이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대사가 많지 않으면서, 상황을 독자가 알게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큰 영역을 독자에게 남겼다. 독자가 생각할 여지는 다양하다. 독자는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스로 깨닫는다. 종국에, 감정은 어떤 저항도 없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죽음을 애도할 자격이 생긴다.

 

신을 만나고, 환한 빛의 공간을 넘어서면 무엇이 남을까. 알지 못하는 것이 아직 남았다. 천국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고, 무無의 영역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살아 있는 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올바르게, 또 선하게 그렇게 사는 것. 신이 들어줄 만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 그것이 옳은 대답이라고 본다. 작가들이 그려내고자 했던 바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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