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 -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파스칼 레네 | 《레이스 뜨는 여자》 | 부키 | 2008

 

  그녀에게 뽐므, 즉 사과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뺨이 둥글기 때문이었다. 뺨은 또 아주 반들반들해서, 그녀 앞에서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할 때면 살짝 빛이 나 보일 지경이었다. 둥글고 반들반들한 뺨 (…)
  그녀의 길지 않은 손가락은 뜨개질 연습을 할 때면 열에 들뜬 듯 움직였다. 그 손놀림은 그녀와 거의 따로 노는 듯 보였지만, 그녀 안에 존재하는 섬세함과 육중함의 통일성을 깨뜨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든 곧장 이런 조화, 이런 통일을 이루었다. 그때 그녀는 구성과 세부가 그 모델을 마치 몸짓 속에 박아 넣은 것처럼 비치는 그런 풍속화 가운데 한 폭이 됨직했다. 이를테면, 틀어 올린 머리를 매만질 때 머리핀을 입에 무는 그 자세! 그녀는 ‘속옷가지를 맡은 하녀’, ‘물 나르는 여인’ 또는 ‘레이스 뜨는 여자’였다. (10-12쪽)  

 

그녀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말로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타인의 행동에 반응하는 법이 없다. 사실, 그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지난 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과 학생, 어린이가 그러했듯, “도시에 있는 한 술집에서 손님 시중을 드는 어머니”가 그러하듯 그녀 또한 상대방이 하는 대로 하자는 대로 그저 조용히 제 자신을 맞춰갈 따름이다. 오로지 듣는 귀만을 허락받는 것처럼 “언제나 자연스럽고 명료하고 참으로 순수하고 동일한 움직임에 따라”서. 그러므로 무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타인을 향한 거의 전적인 수동성을 체화한 채, 딱히 어떤 말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녀, 그리고 그 침묵에 대하여.

 

그녀가 어떻다, 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늘 그랬듯 침묵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그런 만큼 제 입장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말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는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침묵에 대한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해석, 그것이 초래한 뽐므의 처절한 고립을 통해. “운명이 인색하게 나눠 주는 기쁨과 환멸을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이며 아무 거리낌 없이 타인에게 스스로를 내어주던 그녀의 순수가 타인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훼손되며 버려지는지를 보여주며. 끝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신을 지우기로 작정한 그녀의 쓸쓸한 결말로써.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흩날리는, 조금은 비극적인 꽃가루로 비유한 이 인물을 포착하면서 작가는 이 인물에게 흠집을 입힐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토록 가냘픈 존재에 어울릴 만큼 섬세하고 정밀한 글쓰기는 없으리라. ‘레이스 뜨는 여자’는 그녀가 짠 세공품의 투명함 자체 속에서 나타나게 해야 할 것이다. 실 사이로 비치는 빛 속에서……. 그녀는 한없이 단순한 어떤 것인 자신의 영혼을 손가락 끝에 내려놓을 것이다. 한 방울의 이슬, 하나의 완전한 투명함보다 못한……. (70-71쪽)

 

말하지 않는 침묵으로 다만 존재하며 그 나름으로 말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딴에 아는 척 너무 쉽게 말하는 폭력성이 어떻게 인물에게 흠집을 입히게 되는지 《레이스 뜨는 여자》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의 실제적인 곤란을 작품 안에 여실히 고백하고 있는 작가 자신에 의해 한 번 더 강조됨으로.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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