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비》 - 이야기 그 이상의 이름

 

 

크레이그 톰슨 | 《하비비》 | 미메시스 | 2013

 

치료사는 나무판에다가 마방진과 함께 성스러운 구절을 적는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대야에 물을 담고, 나무판의 잉크를 물로 씻어 대야에 담는다. 치료사는 내게 거울을 보며 소원을 빌라고, 그리고 잉크 섞인 물을 마시라고 한다. 글자 하나하나를 마신다는 것은 성스러운 구절에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메시지를 흡수하면 말씀은 곧 우리의 살로 변한다. (472쪽)

 

구원은 이야기 속에나 있다. 예컨대, 경전 같은 데서 범인(凡人)이 온갖 풍파를 겪다가 신에 의해 그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련의 서사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한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실상은 한 발짝도 나올 수 없기에 사람은 신기루에 홀리듯 종종 이야기에 마음을 주고 만다. 그것이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이유고, 때로는 신이 내게 오지 않는 이 세계를 견디는 방식이다. 혹, 사람은 저 구원에 다른 식으로 닿을 수 없을까?

 

예전에는 이곳에도 강이 흘렀다. (…) 구불구불해지는 것이… 마치 글자처럼 굽어진다. 그렇게 글자가 이어지며 이야기가 되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뚝 그쳐 버린다. 말라 버린 것이다. 침묵하는 목소리처럼. (30쪽)

 

가난과 탐욕으로 말라 버린 땅에서 ‘도돌라’와 ‘잠’은 고아 신세다. ‘도돌라’는 자신보다 아홉 살 어린 ‘잠’을 돌보며 함께 자란다. 그렇게 의지해 봐야 약자에 불과한 둘의 삶은 결코 편치 않다. “이토록 타락한 피조물에게 왜 생명을 주셨습니까?”(597쪽)라며 기도하리만치 타락한 사람들 사이에서 둘의 피난처는 이야기뿐이다. 신이 침묵하는 땅에서 그 응답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세계.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를 하는 자 ‘도돌라’와 이야기를 듣는 자 ‘잠’은 저마다에게 이야기보다 더 깊이 자리한다. 곧 둘을 갈라놓는 시련이 닥쳐오고, ‘도돌라’와 ‘잠’은 서로를 구하고자 “자기 자신과의 투쟁”(605쪽)에 뛰어들게 된다.

 

“도돌라는 항상 이야기들을 했지. 그걸 직접 글로 써보면 어때?”
“그 정도로 내 실력에 대해 자신이 있지는 않아.”
“하지만 도돌라는 너무 많이 고통 받았어.”
“아니야… 나를 위해 네가 고통 받았지. 이제 너도 그 역할을 그만해야 해.”
“그럼 어떤 역할을? 나는 도돌라 이야기 속에 남고 싶어.”
“하비비. 너는 이야기 그 이상이야.” (647쪽)

 

‘도돌라’가 ‘잠’을 품에 안으며 새로이 부르는 이름 ‘하비비’는 아랍어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비비》의 말미에서 나는 ‘하비비’를 본다. 하비비…… 끊지 않고 쓴다면 강처럼 영원히 이어진다는 이 문자 속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본다. 구원은 사람 속에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먼저 이야기되어야 할 구원의 서사가 아닐는지.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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