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다》 - 자기를 만드는 매일

 

 

수전 손택 | 《다시 태어나다》 | 이후 | 2013

 

잊혔다. 가슴으로 반응하고 몸으로 행동하고 머리로 곱씹었던 수많은 어제들이, 그렇게 나를 떠났다. 나는 어제를 잊었고, 어제의 나를 잃었다. 어제가 없는 나는, 기억하지 않는 나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나이만 먹으며 살아온 것 같다. 조금도 변하지 못한 채 예전 그대로, 지루하게 비루하게 게걸스레 시간을 먹어치우며. 그래서다. 언젠가 후회했던 무엇에 여전히 뼈가 저리고 반성했던 그것에 아직도 뼈가 아픈 이유.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내가 그랬다. 매일이 오늘 같고 그날이 그날 같은 건 그래서다.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기록하지 않는, 자기(自己)에게 불성실한 나 때문이다.

 

  늙어간다는 두려움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인식에서 탄생한다. 그건 현재를 오용하고 있다는 인식과 상응한다. (374쪽)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지금은 그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도 인식한다. 그러나 자고 일어난 다음에는 오늘이 처음인 양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딴에는 진지하게, 그렇게 매일이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을 사용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삶을 타박하기 위해서 오늘을 소비한다. 세상과의 불화는 세상 탓으로 돌리고 삶에서의 부적응은 삶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잠깐의 자책으로 반성의 의무를 다한 듯 자기를 기만하고, 내일은 반드시 달라질 것을 다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한 뒤 잠이 든다. 하루를 또 먹고 나는, 그만큼 늙어간다. 두려워진다. 현재는 명백히 오용되고 있다.

 

…… 젊음의 한가운데서 갑자기 삶의 번민, 절박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실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굴욕감, 내일의 대화를 연습하고 어제의 대화로 자신을 고문하며 보내는 불면의 밤, 손으로 감싼 채 푹 숙인 얼굴…….

 

  그것은 냉소주의의 등장, 모든 생각과 단어와 행동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아, 완벽하게, 철저하게 진실한 것!”) 신랄하게, 가차 없이, 동기를 심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발견하는 것이다. 촉매와 그리고 (17-18쪽)

 

《다시 태어나다》에는 그 누구보다 자기에게 치열했던 한 사람의 매일이 여과 없이 기록되어 있다. 삶의 중심에 자기를 두고 안팎을 예민하게 응시하며 냉철하게 반성하고 치밀하게 사유하며 열렬하게 탐구해온 그녀의 나날이, 그리하여 얻게 된 내적으로 확장되고 지적으로 고양된 그녀의 자아가, 그 변화의 마디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이미 잘 알려진 지성인 ‘수잔 손택’의 알려지지 않는 탄생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그날의 자기와 자기가 원하는 삶, 그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기록하며 어제로부터 다른 오늘을 꺼내고 거듭 새로운 내일을 살아온, 1947년부터 1963년까지의 청년 수잔 손택이 있다. 

 

  일기를 쓰는 것.
  일기를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생각들을 담는 용기ㅡ속을 터놓을 수 있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 문맹인 친구처럼ㅡ로만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나는 그저 일기에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게 나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창조한다. 일기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는 매체다. 일기는 나를 감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제시한다. 따라서 (아아,) 그것은 그저 매일의 사실적인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ㅡ많은 경우ㅡ그 대안을 제시한다. (213쪽)

 

자기를 만드는 데 매일의 현재를 사용하며,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나 ‘수잔 손택’에 이른 한 사람이, 이 일기를 쓰고 그 일기를 통해 그녀 자신이 비로소, 되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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