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보다》 - 도시를 제대로 보면 달라지는 것들

 

 

앤 미콜라이트·모리츠 퓌르크하우어 | 《도시를 보다》 | 안그라픽스 | 2012

 

이 말부터 하자. 도시는 이야기가 많다. 많은 이들이 사는 덕이다. 우루과이의 한 작가는 “사람은 분자가 아닌 이야기로 이뤄진 존재”라고 했다. 건물 올리고 리모델링한다고 도시가 뚝딱 발전하고 이뤄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건물 지으며 ‘랜드마크’라고 자가발전하는 것, 볼썽사나운 자위행위다. 이야기의 펼침이 도시를 가꾼다. 도시의 태동은 애초 공동의 공간, 공유지였다. 곧, 개인의 존재감은 물론 공동체의 입김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도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그냥’ 살아간다. 어떻게 도시를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다. 도시를 주어진 것, 즉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시기획은 자본과 권력의 편의와 (사적) 이익에 복무하는 경우가 잦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중심이고 주인공임에도 많은 것을 떠맡긴다.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라면 서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야기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도시에 애정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도시에 모이고, 도시는 이야기를 낳는다. 이야기는 다시 도시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이것이 도시의 선순환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도시는 어떤가. 프라이버시(사생활) 등을 명분으로 겹겹이 벽을 쌓아놓은 형국이다. 공공의 것으로 공동의 공간인 도시는, 농촌이라고 다를 바 없겠지만, 공공성의 확장이다. 도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내 사는 곳이 도시라면 더욱 그렇겠다.

 

《도시를 보다》는 도시를 사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도시를 이해하는 100가지 코드’라는 부제는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한다. 물론 한계는 뚜렷하다. 서울과 같은 한국의 도시가 아닌 뉴욕의 소호를 다룬다. 소호의 도시생활을 토대로 도시의 코드를 구성한 시도여서 일부 괴리감도 있다. 그럼에도 소호에 초점을 맞춘 도시 코드가 마냥 이곳과 유리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도시는 사람이,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화이트(《도시 소공간의 사회적 삶》)가 말했다. “사람을 가장 많이 모으는 요소는 바로 사람이다.” 《도시를 보다》는 거기에 덧붙인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현상은 공공장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생활의 기본적인 특징이자, 마을이나 도시에서 사회공동체가 형성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끌림은 개인의 매력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고 의지하는 경제·사회·전략·문화적 의존성에 따른 것이다.”(36쪽)

 

책을 읽고 새삼 다가온 것은 도시와 사람의 불가분의 관계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인 도시는 특정한 코드를 잉태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형성할 수밖에 없는 규칙도 생긴다. 그럼에도 공동의 공간은 유기체처럼 변화하기 마련이다. 《도시를 보다》는 상업적 공간으로서의 소호 혹은 상업적 코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상업주의에 매몰된 도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이 없으면 형성될 수 없는 도시의 DNA를 짚은 것이다. 의당 함께 해야 할 것이 노동이다. 거칠게 말해, 도시는 노동을 먹고 자란다. 산업화 시대 이후 도시는 농촌 혹은 주변부의 노동을 흡수하는 블랙홀이었다. 상업과 노동의 집산지가 도시였다. 이농을 부추긴 것도 도시라기보다는 도시의 상업이었다. 그리고 노동의 유입은 도시의 형태를 하나둘 바꿔나갔다.

 

“도시는 ‘노동’을 필요로 한다. 삶과 노동이 얼기설기 엉켜 있다. 노점상은 활기찬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한몫 거든다.”(34쪽)

 

도시를 살면서 얻는 안정감의 일부에는 노동이 있다. 도시에서 행해지는 모든 노동의 현장이 도시를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노동과 도시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노동과 삶(생활)도 서로에게 삼투한다. 내가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누군가의 삶의 일부는 채워진다. 타인의 노동으로 내 삶의 조각도 완성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도시의 퍼즐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더라도 도시는 매일 같이 다른 퍼즐을 맞춰간다. 그래서 도시의 삶이 매일 똑같다고 말하는 건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령,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도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구성은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생활과 노동의 관계란 타인의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고 자신의 노동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이다. 그 결과적 관계와 상호의존성 때문에 우리는 환경과 상호작용한다.”(66쪽)

 

무엇보다 ‘도시를 보’는 나의 시선을 확장시켜준 것은 공유공간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코드였다. 책이 인용했듯,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건축도시 형태론》를 통해 “공유지가 없으면 어떤 사회 시스템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보기엔 100개의 도시 코드 모두가 넓게 보면 ‘공유’라는 개념을 품고 있다. 사유지가 많을수록 도시는 죽는다. 그곳에 발을 디디는, 밟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니까.

 

공유는 한편으로 네트워크를 조장한다. 이웃과 친구를 만든다. 광장, 놀이터, 교차로 등이 필요한 이유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면 음식을 제공하라는 윌리엄 화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내가 커피를 만들고 음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에 사는 많은 우리는 도시(의 속성)를 너무 모른다. 함께 살고 있는데도 혼자 사는 양 지낸다. 삶에 고독과 고립의 시간도 때론 필요하지만, 도시는 고립이 아닌 관계의 공간임을 자각하는 시간, 《도시를 보다》이다.      

 

“공공장소 개발을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주요 조건은 차량보다 사람이 우선시되는 시설,
사회적 조화를 위한 긴밀한 네트워크,
인간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
따듯한 햇볕을 쬐거나 그늘에서 쉴 수 있는 공간,
한적한 곳을 찾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장소,
그리고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과 뜻밖의 놀라움이 공존하는 미묘한 균형의 조화다.
그럼으로써 거리의 풍경 속에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다.”(92~93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커피스토리' 님은?
커피 만드는 사람, 커피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사유하는 사람,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공간의 주인장이다. 서교동 '수운잡방'에서 서식한다.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본다. 아무렴, 커피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밤 9시, 낮에 만든 커피와 달리,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사랑이 아니면, 낭만이 없으면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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