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우연과 선택이 만드는 인생의 무늬 - 《파이브 데이즈》의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이것을 먹을 것인가, 저것을 먹을 것인가. 저 버스를 탈 것인가, 다음 버스를 탈 것인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볼 것인가, 전화를 기다릴 것인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하죠. 헌데 이것은 또 우연의 영향을 받아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됩니다. 결국 선택의 앞날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작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거기 무력한 어디쯤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 때문일 겁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또 다른 선택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요.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 가능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파이브 데이즈》를 통해서요.

 

   환자 자신이 스스로를 한계 안에 가두고, 실망시키고, 원하지 않는 존재로 자신을 제한하더라도 모니터는 여전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아무 이상 없다고. 이제 기회가 왔다고. 결국 그 기회를 변화의 거대한 물결로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커다란 위로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커다란 위로는…….
   죽지 않고 살아갈 거라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442쪽, 《파이브 데이즈》 중에서)

 

에디터가 묻다!

 

반디 | 《파이즈 데이즈》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한국이 역동적인 나라이고 분단국가라서 평소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에 오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매우 재미있는 방문이 될 것 같다.

 

 

반디 | 《빅 픽처》를 비롯해, 이후 출간된 모든 작품들이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이름만으로 망설임 없이 신작을 선택해 보고 있는데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나는 55개국 정도를 여행 다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도 가봤고 가난한 나라도 가봤다. 당신이 어디에서 자랐든, 그 나라의 사회·경제·종교적 핵심 가치가 어떻든 인간의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이 다르지 않다는 건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다. 《빅 픽처》를 비롯한 나의 소설들은 내가 큰 주제라고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불안을 반영한다. 인간이 살아가고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원하지 않는 방향대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절망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스스로 진지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유명한 작가라는 게 매우 흥미롭다. 나는 유명하기만 한 소설, 반대로 스토리 라인이나 가독성을 잃을 수 있는 문학적인 소설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 두 가지를 소설 속에 잘 융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소설이 독자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반디 | 《파이브 데이즈》는 목요일로 시작해, 월, 화, 수요일을 건너뛰고 다시 목요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구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다른 요일이 아닌 목요일인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5라는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소설 제목으로 '5번가의 여인'이나 ‘파이브’를 썼고, 내가 1955년에 태어나긴 했다. 하지만 5라는 숫자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파이브 데이즈’가 아닌 ‘포 데이즈’가 될 수도 있었다.

 

《파이브 데이즈》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소설은 인생이 얼마나 빨리 변화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딘가에 줄 서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사소한 일들에 의해 달라지는 인생. 많은 이야기들이 이 같은 구성을 사용하고, 이러한 일은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어제 한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기위해 줄을 서 있는데 매우 매력적인 미국인 여성이 내 옆에 서 있었고,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그녀의 직업을 물어보자 그녀는 유명한 패션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녀가 뉴욕에 사냐고 물어와 내가 그렇다고 하자 잘됐다며 관심을 보여서 나는 결혼반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연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생 또한 이와 같다.
 
《파이브 데이즈》가 재밌는 이유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what do you want’, 이 네 단어이다. 대부분은 이 질문의 답을 모른다. 두 번째는 삶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해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변하는 것은 왜 힘든가. 이 소설은 우연한 만남에 의해 발생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변화가 당신 앞에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때때로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왜 불행한 상태로 지내는지에 관한 문제가 나는 흥미롭다.

 

 

반디 | 소설 초반, 주요 인물을 설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인물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무엇인가요? 그 인물의 현실적 조건과 상황, 심리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체화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더글라스 케네디 | 인물을 표현할 때, ‘devil has no detail’이라는 영국 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설의 인물을 가능한 한 3차원적인 인물로 복잡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투쟁의 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살면서 가장 큰 투쟁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내가 인물을 구상할 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삶을 항상 관찰하려고 한다.
 
반디 | 《파이브 데이즈》에서 주인공인 ‘로라’는 영상의학과의 촬영 기사입니다. 삶의 끝을 볼 수도 있고 시작을 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녀의 직업은 여러모로 중요한 인상을 남깁니다. 작가님은 특히 이 직업의 어떤 면을 소설에 반영하고 싶으셨는지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이브 데이즈》의 ‘로라’는 삼 년 전에 떠올린 인물이다. 당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사십대의 매력적인 검사관이 스캔을 진행했다. 나는 싱글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관심이 갔다. (웃음) 시간이 지난 후에 그녀에 같이 앉아서 스크린을 보며 다른 사람의 암을 들여다보는 직업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의 삶에서 암이란 아주 일반적인 것이지만, 소설에서는 암을 일종의 촉매제로 활용하려고 했다.

 

   방금 내 눈으로 암을 보았다. 암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종말의 시작을 보고 있는 건가?’라고 깨달으며, 그때마다 늘 그렇듯이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7쪽, 《파이브 데이즈》 중에서)

 

반디 | 사랑이 없는 삶과 사랑이 있는 삶은 《파이브 데이즈》에서 대조적으로 그려집니다. 결국 사랑을 계기로 ‘로라’는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기도 하고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님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으셨는지요?

 

더글라스 케네디 | 우리에게 지금 시간이 충분한가? (웃음) 그 이야기에 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사랑에 빠진다. 종종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가끔은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말이다.

 

‘로라’는 첫사랑을 통해 사랑을 알았다. 이후 임신해서 결혼하게 됐다. 그것은 그녀의 결정이었다. 다 자란 아이 둘과 남편이 있는 결혼생활. 무난한 때가 온 거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에는 아이들이 없을 것이고, 그때에 ‘로라’와 남편은 서로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한편, ‘리처드’는 중년의 보험판매원으로 특징이 없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이고, 또 외로운 사람이다. 이 소설의 주제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결혼생활 중에 느끼는 외로움은 정말 끔찍한 것이다. 그렇게 외로운 그들에게 사랑은 가능성의 감정이다.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리처드’는 ‘로라’와 함께하는 주말동안 매력적으로 변한다. 옷을 바꾸고 예전의 이미지를 버린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삶에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게 생긴다. 사랑이 곧 희망인 것이다. 동시에 변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기도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전형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무엇이라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반디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으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나는 믿는다. 상대에 대해 전혀 모르고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런던에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길이 비어 있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삶의 경험 중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장 드라마틱하다는 거다.

 

반디 | 죽지 않고 살아갈 거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끝맺고 계십니다. 《파이브 데이즈》가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편으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은데요.

 

더글라스 케네디 |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살기 위해 매일 죽음에 대하여 조금씩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28일 후에 59세가 될 것이다. 60세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흡연도 안 하고, 매일 운동을 하기 때문에 30년쯤 더 살 것 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운이 좋으면 35년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40대가 지나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고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언젠가 죽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죽음에 대해 알아야 삶을 형성할 수 있다. ‘로라’의 경우, 40살이 지나고 시간의 변화를 느끼면서 삶에 대해 진지해졌다. 쉽지 않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된다.

 

 

반디 | 한국에서도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삶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파이브 데이즈》가 그런 독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것 같은데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이브 데이즈》를 읽은 61살의 지인이 내게 말했다. ‘로라’는 아직 젊은 여자지만 자신은 나이가 들어 남편과 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소설을 읽고 그런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답했다. (웃음) 사실 살다 보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그리고 삶에 대해 많이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그렇지 않게 다가온다. 그 때문에 삶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타인에게 실망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때로는 선택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도 선택할 것은 있다. 예컨대, 부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지만 그 반대를 택할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바랐지만 나는 작가가 되었다. 이것은 선택이었다. 쉽지 않았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선택한대로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자식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연인과의 결별을 극복하지 못했다. 심리적인 문제를 배제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다 선택의 결과였던 것이다.
 
반디 | 소설에서 독서 클럽의 멤버이자 친구로 등장하는 ‘로라’와 ‘루시’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매주 한 시간 반 동안 소설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딱 한 시간 반에서 멈추지 않았다. 세 시간쯤 이어지는 만남은 각자의 생활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일들을 털어놓는 자리로 이어졌다. 루시는 우리 생활을 ‘우리의 현재 기상 상태’라는 말로 우아하게 표현했다.
   (…) 내가 말했다.
   “진짜 문제가 뭔지는 나도 알아.”
   “그럼 답도 알고 있어?”
   나는 다시 와인글라스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한참 동안 침묵한 끝에 마침내 내가 말했다.
   “답은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해.”
   “나도 그래.” (83쪽, 《파이브 데이즈》 중에서)

 

더글라스 케네디 | 이 책은 소설인 동시에 읽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나는 종종 세상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이것이 내 소설에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결혼, 꿈, 개인적인 책임감과 긴장감처럼 사람에게 닥쳐오는 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나에게 미국인은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럼 나는 미국에 아주 지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곳에 똑같이 나타난다. 특히 '로라'와 '리처드' 같은 사람은,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결혼생활에서 외로움을 느껴서 책을 읽는다. 이것은 그들이 여행할 수 있는 삶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라'는 넉넉하지 않다. '리처드' 역시 돈이 많지 않다. 이들은 비행기를 버스처럼 타는 나와 달리 여행을 할 여유가 없다. 나는 항상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이것이 내 삶이고 난 이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 이웃을 비롯해서 한 번도 여행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때에 책을 읽는 것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책을 읽는 것은 항상 호기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

 

반디 | 《빅 픽처》의 ‘벤’이 그랬고 《파이즈 데이즈》의 ‘로라’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진짜 모습과는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 안에선 이 같은 가면이 필연적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작품 속 ‘벤’과 ‘로라’ 뿐 아니라 실제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점점 더 버겁게 느끼는 듯합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여태까지 받아본 것 중 가장 좋은 질문이다.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고, 그래야만 한다. 실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슬픔, 분노, 상실감 같은 것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을 유지하거나 불행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게 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경우에 말이다. 이때에 당신이 어떻게 할지 정한 후에는 가면을 벗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나는 소설을 통해 묻고 싶다. 《빅 픽처》의 경우, 어떤 레벨에서는 서스펜스로 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의 의미,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그것을 재창조 하는지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자신을 찾았고, 그렇게 찾은 자신이 진정한 자신이 아닌 걸 발견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박스가 나오는 차이니즈 박스와 같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고, 진실을 마주할 때 그것이 떨어져 나간다. 나에게는 이것이 흥미로운 주제고, 내 작품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반디 | 작가님 소설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반전’이 많이 거론됩니다. ‘반전’의 효과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그런 효과를 소설 안에서 극대화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이브 데이즈》에도 반전이 있다. '리처드'가 결정한 것은 좀 슬프긴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고, 모든 이야기는 문제를 다룬다. '아기 돼지 삼형제' 에서 늑대를 없애버리면 뭐가 남는가? 늑대가 없다면 그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 있는 무언가를 다룬다는 것이다. 꼭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다든가 아내의 애인을 죽이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도, 반전은 현실에서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극적인 장치로서 사용한다.

 

반디 |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동력 때문인지 작업 방식이나 소요 시간 등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묘사해주신다면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난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다. 카페에서든, 택시에서든, 비행기나 기차에서든. 소음이나 음악이 있어도 상관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매일 500자 정도의 글을 쓰려고 한다. 오늘도 점심 식사 후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남았고, 시차 적응이 안 됐음에도 글을 썼다. 글쓰기는 예술이고, 또한 일(craft)이기도 하다. 이것이 나의 철칙이다.
 
반디 | 처음 소설을 쓰고자 했을 때 동기 부여가 된 작가나 문학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열권쯤 되기 때문에 특정한 책을 최고라고 꼽기가 어렵다. 각각의 책을 저마다 다른 이유로 좋아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겐 완벽한 소설이다. 미국인들의 생활의 중심과 미국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끔찍한 슬픔에 대한 정말 훌륭한 이야기다. 《End of the affair》는 내가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이다. 사랑하면 왜 소유하려고 하는지, 사랑의 그런 구조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마담 보바리》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이 소설은 1850년대에 발표된 플로베르의 작품이다. 외로운 가정주부의 불륜을 다루고 있는데, 인간의 외로움을 이만큼 중요하게 다룬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외로움은 어디에나 있다.

 

이 외에도 나에게 중요한 작품은 많다. 그로 인해 어떤 것에 진실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독서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책으로 힐링 받고 내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반디 | 올해 개봉한 ‘파리5구의 여인’과 ‘빅 픽처’는 작가님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실제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셨었는데요. 작가님에게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기쁨이 있을까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리5구의 여인' 같은 경우는 각색 작업에 참여했지만 감독의 디렉션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프랑스 영화인 '빅 픽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영화는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카지노와 같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고, 소설은 영화는 아니다. 이것은 350 페이지 소설이고, 영화는 한 페이지에 1분인 100페이지짜리다. 그래서 소설을 영화에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을 존중하지만,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파리5구의 여인'에는 좋은 배우들이 참여했지만 내 생각에 좋지 않은 영화이다. 러닝 타임이 85분으로 짧은데도 지루하다. 나는 감독의 의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하고 조용히 나갔다. 그래도 이에 대해 언론에 말하지 않았다. 프랑스 영화이기 때문에 특히 프랑스에서는. 그 외에 영화화된 '빅 픽처'를 비롯한 다른 영화는 괜찮게 보았다. 이런 영화보다도 소설을 쓰고자 하는 것은 잘하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는 공동 작업이 아니라서 나에게 큰 자유를 준다.
 
반디 | 작가님에게 당장 아무 계획이 없는 5일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나에게 그런 시간이 있다면 사람들이 없는 아름다운 해변가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코스타리카에서 좋은 곳을 찾았다. 겨울이라면 캐나다 로키산맥에 크로스 스키를 하러 가고 싶다. 그리고 난 일 년에 세 번은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핸드폰과 컴퓨터를 끄고 어디론가 간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에이전트와 아이들뿐이다. 그 외의 사람들과는 연락이 안 된다. 인터넷은 아주 훌륭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스크린을 보면서 지낸다. 그래서 때때로 연결되지 않는 건 중요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

 

독자가 묻다!

 

독자 | 《빅 픽처》 이후 작가님의 책을 빼놓지 않고 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이제까지 집필하신 작품 중 어떤 게 가장 애착이 가시는지요.

 

더글라스 케네디 | 딱히 없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 왜 다른 것보다 좋은지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또한, 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걸작을 쓸 거야, 하고 앉아 있어도 걸작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쓸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 잘 안 써질 때도 있고 확신이 안 설 때도 있다. 결국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오랫동안 관계를 맞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쓴 것들이기 때문에 내가 쓴 소설들을 다 좋아한다.
 
독자 |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그 중압감을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글 쓰다가 막히기도 하지만, 책임질 게 많기 때문에 글을 써야만 한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한 번은 1987년에 세 달 정도 글을 못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에 담배를 피웠는데 나중에는 담배 없이 글 쓰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보통은 글쓰기가 잘 안 되면 다른 것들을 한다.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다닌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고, 그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 과정 속에서 전혀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매우 행복하다. 이 또한 깨지기 쉽기 때문에 늘 존중을 표하려고 한다. 매우 성공한 작가처럼 글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글을 써야 한다.
  
독자 | 혹시 작가가 안 되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으신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클래식 음악에 많은 관심이 있다. 열다섯 살에 지휘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랬다면 내 인생 전체를 다시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지휘자는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장과 같다. 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보다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이끄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아마 다음 생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더글라스 케네디

 

1955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으며 다수의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2010년 국내에서 출간된 《빅 픽처》는 최고의 화제를 끌어 모으며 국내 주요서점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어 있다. 《파이브 데이즈》는 진정한 ‘나’를 찾는 5일간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잘못된 결혼이었다고 느끼면서도 23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지혜로운 아내이자 좋은 엄마로 살아온 로라는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영상의학과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만난 보험세일즈맨 코플랜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된 로라는 새로운 삶의 가치와 행복에 눈뜨게 된다. 주요작품으로 《더 잡》, 《리빙 더 월드》, 《템테이션》, 《행복의 추구》, 《파리5구의 여인》,《 모멘트》, 《빅 픽처》, 《위험한 관계》 등이 있으며 격찬을 받은 여행기로 《BEYOND THE PYRAMIDS》, 《IN GOD'S COUNTR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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