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진짜는 힘이 세다 - 《어이없는 놈》의 시인 김개미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및 도서 이미지 제공 | 문학동네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 ‘어이없는 놈’ 중에서

 

어디서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치면요.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고 치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요? 다섯 살짜리를 동생이라고 했으니 다섯 살보다는 많대도 열 살? 열한 살? 많아 봐야 제가 보기에는 역시 귀여운 아이일 듯합니다. 그런데요. 어른이랍니다. 진짜 아이보다 더 진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 사람, 김개미 시인이요. 그런데 내막을 다 알고 봐도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동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아이였으리라고 느껴지니까요. 아마도 저는 다시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가 아니라 ‘어떤 마음일까요?’라고. 진짜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답이 있을 테죠.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집 한 권을 막 펼쳐든 참입니다.

 

 

반디 | 안녕하세요, 김개미 선생님. 독자 분들에게도 소개드릴 겸,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성함을 접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곤충인 ‘개미’가 연상되어 동시를 쓰는 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어떤 뜻을 가진 이름인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개미 | 곤충 ‘개미’ 맞아요. 어렸을 때 산 중턱에 살았거든요. 학교 가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열심히 가야 했죠. 그래서 새까맣고 비쩍 마르고 쬐그맣고 그랬어요. 다큐 같은 거 보면 히말라야에 사는 아이들 나오잖아요. 산 넘고 물 건너 이슬 털며 학교 가는 아이들. 비슷했어요.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눈은 반들반들하고.

 

장마가 지면 개울이 넘쳐 며칠씩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학교에 가보면 반 아이들이 훌쩍 자라 있었어요. 수업 끝나고 혼자 남아 기말고사를 치고 그랬지요.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거의 안 했어요. 누가 말을 걸면 어디가 가려운 것 같고 입술이 씰룩이는 것 같고 그랬어요.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말은 할 줄 아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래도 친구들이 좋았어요. 놀리고 무시하고 그러지는 않았거든요. 대신 별명을 지어줬어요. ‘개미’라고. 친구들이 별명을 불러주면 기분이 괜찮았어요. “개미야, 개미야.”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거든요. 어린이들은 별명 부르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별명을 필명으로 써봤어요. 만만해 하라고. 별명이 고릴라나 사마귀였다면 더 재미있었겠죠?
 
반디 | 지난 봄에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후 여름에는 수상작을 엮은 동시집 《어이없는 놈》이 출간되었고요. 여러모로 꽉 찬 2013년을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상반기 활동이 하반기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요. 올 가을에는 주로 어떤 일에 집중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개미 | 요즘은 노는 게 일이에요. 한껏 게으름을 피우죠. 작년까지가 바빴어요. 앞으로 이 년 정도 더 놀려고 해요. 스스로에게 주는 방학인 셈인데요. 방학답게 과제물도 있어요. 올 가을부터 내년 전반기까지 시집 원고를 살피는 거죠. 시집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걸 마치고 나면 뭘 하고 있을까요? 저도 궁금해요.

 

반디 | 《창비 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신 것이 2010년이었죠. 사실 선생님께서는 그 이전인 2005년에 이미 《시와 반시》를 통해 시로 등단하셨습니다. 동시보다 시를 먼저 써오신 걸로 보여지는데요. 동시에 애정을 갖고, 동시의 길로 들어선 본격적인 계기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김개미 | 2008년인가 어린이도서관에 근무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임길택 선생님의《산골 아이》를 접했는데, 그게 좋았어요.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최승호 선생님의 《말놀이 동시집》도 접하게 됐는데,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최승호 선생님을 좋아했거든요. 최승호 선생님 시는 뭐랄까. 거침없고, 건조하고, 자신감이 넘치잖아요. 그런데 그런 분이 동시를 쓴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동시가 궁금해진 거죠.

 

어린이도서관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모았어요. 동시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지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동시뿐만 아니라 동시 비슷한 것도 죄다 찾아 읽고 공부하는 수밖에요. 그때 2학년 아이들하고 공부를 했는데, 제가 주로 배웠어요. 아이들의 생각, 관심거리, 말법 등. 그 녀석들 지금 6학년쯤 됐겠네요. 진짜 말 안 들었는데, 그래서 더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러네요.

 

반디 | 선생님 글쓰기의 원천인 할아버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상 소감과 동시집의 머리말 등을 통해서 글쓰기와 독서의 재미를 알려주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털어놓고 계신데요. 추억은 시간을 갉아먹고 힘이 세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시인이 된 지금, 선생님 안에서 할아버지가 제일 힘이 세질 때는 주로 언제인가요?

 

김개미 | 여덟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울었어요.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도, 학교 갔다 오다가도, 멱을 감고 바위에 엎드려 있다가도. 그냥 눈물이 주루룩 떨어지곤 했어요. 늘 궁금했어요. 왜 내 머릿속에는 매운 연기가 꽉 차 있을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십 년이 걸렸어요.

 

흔히,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말을 하잖아요? 서른 살이 넘으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웃을 때 할아버지도 함께 웃는 게 느껴져요. 저는 글을 써놓고 여러 번 소리 내서 읽는 버릇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살아나 제가 글 읽는 소리를 들어요.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가장 힘이 세진 건 《어이없는 놈》이 세상에 나왔을 때였어요.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방바닥을 더듬더듬 헤매고 다니시겠지요. 빨리 돋보기를 찾으려고 말이죠. 그래야 《어이없는 놈》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반디 | 《어이없는 놈》의 표제작인 ‘어이없는 놈’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아이가 저보다 조금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이처럼 아이에게 친절하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어른 화자보다 톡톡 튀는 진짜 아이 목소리를 곧잘 들을 수 있었어요. 술술 읽힌대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일 텐데요. 어른인 선생님께서 아이의 시점을 갖기 위해 무엇에서 영감을 받으시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요?

 

김개미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어른이면서 동시에 아이이고 또한 노인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 목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특별히 노력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아, 아주 없지는 않네요. 제가 그림책을 좀 좋아해요. 사람을 천진하게 해주거든요. 무장해제에 그만이죠.

 

그리고 이건 좀 복인 것 같은데요. 애들이 저를 좀 좋아해요. 군대에 있을 때 서예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학원 애들이 놀러오고는 했어요. 삐뚤삐뚤한 글씨로 위병소에 이름들을 적어놓고는 장난들을 치며 장교숙소로 와요. 한번은 제가 사랑니를 빼 퉁퉁 부은 얼굴로 누워 있는데, 되게 불쌍해 보였나 봐요. 그 다음날 과자를 잔뜩 사갖고 왔더라고요. 이빨도 안 좋으니 살살 녹여먹으라고 그랬겠죠?
 
반디 | 동시집이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아이의 일상을, 2부는 아이의 내면을, 3부는 나와 다른 존재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러한 흐름으로 엮은 배경을 선생님께서 조금 더 부연해주세요.

 

김개미 |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예요. 제가 성격이 좀 급하고 인내심이 없어요.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인데, 처음 몇 장이 재미없으면 던져버려요. 어른인 제가 이러는데,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인 제가 명심할 것은 뭐겠어요?

 

그런데 재미있기 위해서는 어렵지 않아야 하잖아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래야 속 깊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고요. 그러다 보니 1부에는 비교적 아이들이 금방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2부에서는 속 얘기도 좀 하고, 3부에서는 다른 대상과의 대화도 시도해보고, 그렇게 된 거예요.

 

나한테 침과 담배꽁초
들끓는 모기떼뿐이라고?

 

얼굴 말고 가슴을 봐
난, 별을 껴안고 있어

 

- ‘웅덩이’ 전문

 

반디 | 저는 ‘웅덩이’가 참 좋았습니다. 아이와 어른을 통틀어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껴본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동시였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공감대가 넓은 동시를 보니 선생님께서 지향하시는 바가 궁금해집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이없는 놈》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면요?

 

김개미 | 저는 ‘보통 아이’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고아이거나, 왕따이거나,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놀림을 당하거나, 아버지가 주정뱅이거나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 잘난 것도 못난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옆집 아이, 윗집 아이, 친척 아이 혹은 그냥 ‘평범한 어른’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을 짚어주는 목소리도 있어야 되고요. 《어이없는 놈》이 그 목소리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읽는 분들이 어떤 느낌을 받기를 원하는데요. 그게 ‘해방감’이라면 좋겠어요.   
 
반디 |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 분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도 창작공연집단 ‘두목’의 명예단원이시고, 연극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연극에서 어떤 자극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김개미 | 몇몇 시인들과 배우들이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저같이 글밖에 모르는 사람이 연극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쩌겠어요? 경험도 재능도 없는데…… 내세울 수 있는 건 ‘진심’뿐이더라고요. 싸우는 대목에서는 진짜 싸우고, 흉보는 장면에서는 진짜 흉보고, 우는 장면에서 진짜 우는 수밖에요. 그러니까 연극이 ‘연극’이 아니라, ‘리얼’이 된 거죠. 그게 글 쓰는 데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진짜 내 감정, 내 느낌, 내 경험, 내 생각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된 거예요.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이란 게 있는데, 생각은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요? 자기 생각을 부끄러워하는 게 부끄러운 거죠. 연극은 표정과 말과 몸과 영혼과 행동 전체를 무대에 올리잖아요. 한눈에 다 보여요. 가짜인지 진짜인지. 글도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문창과나 국문과 이런 데도 안 나왔고요. 뾰족한 기술도 천부적인 재능도 없어요. 진짜를 보여주는 것 밖에 다른 전략이 없어요. 배우들, 같이 공연했던 시인들을 만나면 그걸 상기하죠. 진짜를 하자. 진짜를.   

 

반디 | 동시대 작가 분들에게 받는 자극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소설이나 시에 비해 동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소문내고 싶은 보물이 많을 것 같아요. 선생님을 자극한 좋은 동시집들을 독자 분들에게 소개해주세요.

 

 

김개미 | 저는 좋은 동시 중에서도 특히 간결하거나, 선명하거나, 다정한 동시에 끌려요. 제가 자주 읽는 동시집 10권을 소개할게요.  

 

1. 쉘 실버스타인 《폴링업》, 사계절
2. 유미희 《짝꿍이 다 봤대요》, 사계절
3. 김환영 《깜장 꽃》, 창비
4. 이정록 《콧구멍만 바쁘다》, 창비
5. 이안 《고양이의 탄생》, 문학동네
6. 김륭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문학동네
7. 권오삼 《똥 찾아가세요》, 문학동네
8. 안도현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실천문학사
9. 박방희 《머릿속에 사는 생쥐》, 문학동네
10. 함기석 《숫자벌레》, 비룡소

 

반디 | 볼거리, 읽을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동시집을 비롯하여 책 자체를 멀리하기 쉬운 환경인데요. 이런 때에 아이가 스스로 찾아 읽지 않는다면 가운데에서 매개하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동시 읽기, 아이와 함께 즐기는 방법을 권해주신다면요?

 

김개미 | 그냥 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게요.

 

저는 ‘책 읽어주기’를 권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실 거예요. 대부분 부모님들이 미취학 아동에게는 책을 정말 많이 읽어줘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초등학생이 돼도 중학생이 돼도 고등학생이 돼도.

 

아기 때부터 읽던 책 있잖아요. 거기 동시집도 살짝 넣으면 좋겠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중학교에 들어가도 아기 때처럼 침대에 함께 누워서 읽는 거죠. 아이가 굉장히 차분해지고 편안함을 느껴요. 자신이 아기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게 얼굴에 나타나요.

 

결국, 독서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주자는 얘기지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아이는 빠르면 초등학생 때, 늦으면 고등학생 때 스스로 책을 읽을 거예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요. 이 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책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행복을 느껴야 돼요. 그게 중요해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을 느끼니까요.

 

그러니까 아이가 중학생이 됐다고 그림책을 다 갖다버리거나 남한테 주면 안돼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책을 대하면 위로를 받지요. 추억이 있으니까요. 그건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잖아요? 아이는 행복해지고 싶을 때마다 책을 찾게 되고, 결국 책 읽는 행복을 알게 되겠지요.

 

그 아이가 자라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기르겠어요?

 

 

반디 | 앞서 할아버지에 관해 여쭤 봤는데요. 그 기억이 특별하다 보니 왠지 한 번쯤은 자신의 경우도 그려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게 될는지요. 선생님께서는 훗날 손녀나 손자에게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김개미 | 귀촌하는 꿈을 꿔요. 할 거고요. 이 년 육 개월이 지나면 농촌마을 주민으로 살아갈 건데요. 느리게 느리게 굼벵이처럼 살 거예요. 그리고 혼자만의 숲 하나를 만들 거고요. 자작나무를 좋아하는데 그걸 잔뜩 심을 거예요. 자작나무 숲에 혼자 앉아있는 날이 많겠지요. 동네 꼬마들이 ‘자작나무 숲의 마녀’라고 할지도 몰라요. 으흐흐흐. 지금부터 괴상한 웃음소리를 연습해서 고놈들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들어줘야겠어요.

 

손자손녀를 자주 보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가끔 찾아오기는 하겠지요. 그럼 신나게 놀아야죠. 자작나무 뒤에 숨기도 하고, 숨어서 나뭇잎을 건드리고 가는 바람소리를 듣기도 하고. 미친 듯이 뛰기도 하고, 뛰다가 구르기도 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통통 튀는 할머니. 농담을 즐기는 할머니. 꽉 막히지 않은 할머니. 어린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모두 들어있는 할머니. 만만한 할머니. 장난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 무엇보다 천진한 할머니. 

 

아직 집에 있으면
따뜻하게 입고 학교 가거라
여긴,
암탉의 눈동자가
공깃돌처럼 달그락거리고
개밥그릇의 물은
시멘트처럼 딴딴해서
거꾸로 들어도 안 쏟아진단다
지겟작대기같이 키 큰 고드름이
지붕을 꽉 붙들고
차돌 같은 할미 이빨은 딱딱
북을 치고 야단이란다
그러니 우리 강아지,
단단히 입고 학교 가거라

 

- ‘추운 날 할머니 전화’ 전문

 

* 위 동시들과 삽화(오정택 그림)는 《어이없는 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개미

 

1971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 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와 동시집 《어이없는 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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