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밤에》 - 너와 내가 친구 되기

 

 

키무라 유이치·아베 히로시 | 《폭풍우 치는 밤에》 | 아이세움 | 2005

 

그 친구와 나는 교집합이 많다. 한 동네에서 유년을 함께 보냈다. 좋아하는 음식과 즐겨 보는 영화가 같고, 가치관이나 사고방식도 겹치는 데가 꽤 있다. 심지어는 남들한테 둘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닮은 사람일 거다. 하지만 나는 가끔 우리에게서 ‘너’와 ‘나’를 본다. 너무 상반된 모습으로 처음 알게 된 어린 날을 떠올린다. ‘나’는 그때의 ‘너’와 ‘나’보다 정말 닮아졌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도 너무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는 타인이다. 어른이 되고 저마다 개인적인 경험을 쌓아 갈수록 삶의 거리는 더 크게 벌어졌다. 헌데 ‘너’와 ‘나’는 왜 동질감을 느낄까? 답은 시간에 있다고 본다. 나이 들면서 늘어난 건 혼자만의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는 밥을 먹었고 수다를 떨었고 여행을 다녔다. 그 무수한 만남 가운데 기쁨과 고통을 공유했다. 한마디로 추억이 늘었다.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든 그것이.

 

추억은 이들에게도 생겼다. ‘덥석덥석 골짜기’에 사는 이와 ‘산들산들 산’에 사는 이. 사는 세계부터가 이미 다른 이들은 무려 늑대와 염소다. 절대 우리가 될 수 없는,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닌가. 그러한 이들이 먹이사슬까지 초월하고 친구가 된 때는 앞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이었다. 잠시 몸을 피해 있어야 할 정도로 날이 궂었다.

 

하얀 염소는 언덕을 미끄러지듯이 가까스로 내려와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작은 오두막으로 기어들었습니다. (3쪽)

 

이윽고 염소에 이어 오두막으로 찾아든 이가 늑대였다. 그곳은 어두운 데다, 둘 다 코감기에 걸려 냄새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늑대와 염소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연과 오해가 더해져 만든 이 상황 속에서 둘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다. “우리는 정말 닮은 구석이 많아요. 그렇지요?”(40쪽)라는 말에 “나도 막 ‘우리는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41쪽)라고 맞장구치는 이들은 영락없는 친구 사이다. 곧 비바람이 잦아들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둘은 어둠 속에서 다음을 기약한다.

 

“좋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잖아요.”
“그럼, 내가 ‘폭풍우 치는 밤에 친구가 됐어요.’라고 말할게요.”
“‘폭풍우 치는 밤에’만 말해도 알아요.”
“그럼, 우리 암호를 ‘폭풍우 치는 밤에’로 하지요.”(45쪽)

 

<폭풍우 치는 밤에>(2005): 본 그림책을 원작으로 만든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둘은 첫 번째 추억을 나눠 갖고 헤어진다. 이것이 《폭풍우 치는 밤에》의 시작이다. 늑대와 염소에게는 아직 남은 이야기가 더 있다. 누가 봐도 너무 다른 이들의 친구 되기는 결코 순탄하지 않다. 둘을 갈라놓으려는 외압도 있고, ‘너’와 ‘나’라는 차이를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도 닥쳐온다. 하지만 그 시간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추억이 된다. 앞서 있던 “폭풍우 치는 밤”에 또 다른 밤들이 얹어지는 것이다. 늑대와 염소는 결국 친구가 되었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여전히 늑대와 염소만큼이나 다른 ‘너’와 ‘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너’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너’와 닮았다고 느낄 정도로, ‘너’를 닮고 싶어질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서.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62 63 64 65 66 67 68 69 70 ··· 507 next